검사지 앞에 되돌려진 3년이라는 시간

생각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by Karel Jo


22년 말, 상담실에서 임상심리사 선생님의 결과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무겁게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던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함에 빠져 있는가를 통감해야만 했다. 분명 그 당시에는 힘들다고 생각했으면서도 힘든 현실을 맞닥뜨려 이겨낼 의지는커녕, 그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 견디고 참아내어 간신히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스스로에게, 그래서 회사에서 새롭게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똑같은 검사지를 받아 들었을 때, 나는 옛 생각에 잠시 잠겼다.


과거의 기억에 잠시 취하긴 했어도, 검사를 진행하기 전에는 솔직한 마음으로 기대감이 조금은 있었다. 나아졌을 거라는. 나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고, 충분히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들어온 말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3년 전의 나보다는 분명히 더 좋아졌을 거라고.


모든 문항에 어떻게 대답하였는지까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대답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했던, 또는 이미 기대할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밑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에서 나온 체념의 답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아마도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 수는 있는,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 정도는 내비쳤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 이메일로 결과지를 알리는 짧은 이메일이 와 있었다. 그리고 열어본 그 문서를 보고 나는 무너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방향의 그래프, 3년 전 결과물과 전혀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드러난 성향 검사. 나라는 사람은 그 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불안정했으며 여전히 안에서 스스로에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저 그걸 적절한 방식으로 잘 감추고 있었을 뿐. 나는 나아진 것이 아니었다. 훌륭하게 나를 덮어내었을 뿐.


물론, 그 안에서의 메시지는 분명히 명확했다. 현실의 어려움에 깊이 힘들어하고 있지만 적절한, 전문적인 치료를 동반하면 좋아질 수 있는 예후가 충분히 있고,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없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이 다시 치료의 적기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런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내가 허탈함을 토해내는 것은 온당한 처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또다시 감춰 놓았던 나의 어두움을 직면하게 되었다. 괜찮다고 웃어온 수없는 시간들과 사람들에게 쏟았던 나의 에너지. 믿음을 주기 위해 스스로와 타인을 기만했던 그 모든 시간들. 그건 기만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진심이었을까. 진심이 꺾인 걸까, 아니면 그조차도 사실은 시계를 하루 한 시간, 일 초라도 더 흐르게 만들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책이었던 걸까.


이 또한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나아졌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동정과 연민보다 안부를 더 물어오는 시점에서 객관적으로는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은 때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안에서 잔뜩 다시 꼬인 실타래는 어느 시점에서는 풀어낸 것이 아니라, 내가 거칠게 잘라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결국, 잘라낸 지점에 다시 닿아버리자 또 어디서부터 풀어낼지 모른 채로 엉켜버렸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또다시 실망시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을 실망시키기 이전에 나 스스로가 나 자신에게 볼 낯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의 시작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온다. 이렇게 되는 순간 겉으로 웃어지는 웃음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일그러진 얼굴 속에 감정 없는 표정으로 돌아서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와, 딸들의 두 눈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한 채로, 검게 덮어진 꿈자락 사이에서 쫓아오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칼끝만 매일매일 간신히 피해나가는 그런 일상.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생각을 멈췄던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지만, 때로는 자기들의 생각을 대신 맡기는 편리한 도구 정도로 나를 바라보는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내가 좋았던 때는 언제였을까. 3년 전이 이제는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도 즐거움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던 그런 순간은 있었을까. 그때가 그립다. 그때가 있다면 다시금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렇게, 지금 다시 그 결과지 앞에 스쳐간 세월을 다시 되돌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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