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남은 듯이 잡아 보니 어느덧 사라지는 시간

한 시대의 저묾이 몸으로 다가오는 순간

by Karel Jo


한동안 몰려드는 수많은 업무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피로감이 겹쳐 쓰러지지 않도록 간신히 나를 붙잡고 있는 연휴가 시작되기 전 금요일, 나는 그저 하루가 빠르게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이번 연휴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나 자신을 잠시 세상과 단절시켜 목가적인 고요함 속에서 조금 더 삶에 대한 활력을 찾아보기로 다짐하며, 퇴근 후 들어온 집 현관에서부터 나는 어쩐지 벌써부터 마음이 풀린 상태로 긴장을 놓아 버렸다.


그 긴장이 다시 온몸을 휘감기까지는 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첫날을 성공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나에게 온 짧은 연락 한 통. 큰 고모부께서 하늘로 돌아가셨다는 그 짧은 연락에, 나의 일상은 그대로 다시 팽팽하게 당겨져 날카롭게 벼려졌다. 곧 부모님에게서 전화로 상황을 전해 듣고,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날 다 같이 찾아뵙자고 약속하고 그렇게 마지막을 함께 해 드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 중에선 나이가 어린 편이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다. 아버지 쪽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두 분이 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들과의 유대관계가 쌓일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고, 어머니 쪽은 그나마 아직 할머니께서 살아 계시고,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교에 다닐 무렵에 돌아가셨으니 그래도 추억이 조금은 있는 편이었지만, 이 쪽은 거리가 문제였다. 일 년에 한 번을 찾아뵈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거리.


그래서 나는, 경사보다 조사가 더 많아지는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장례식은 많이 참석하였지만 정작 내 가족과 연관된 장례식은 많이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니 사실, 나에겐 시간이 그리 잘 체감되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실 거라는 굳은 믿음. 그리고 나 또한 불혹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 스스로가 그 나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나는 성인이었지만 어른이 아니었다. 나의 시대는 아직도 아버지의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 체감이, 그 믿음에 조금씩 금이 간 시작점이 이번 큰 고모부의 장례식이었다. 나로 치면 매형이 돌아가신 셈, 그래서였을까, 자식들 앞에서는 강하게 버티신 것 같던 고모께서도 아버지를 보자 슬픔을 감추실 수 없었고, 아버지는 그런 고모를 그저 말없이 안아주실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옆에서 보는 나에게도, 어쩐지 울림이 다가왔다. 이제는, 사실은 진작부터 아버지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음을.


심장에 새로운 생명을 얻으실 때만 해도 아직은 꽤 멀게 남아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나 또한 40에 접어든 나이, 아버지로서는 70을 훌쩍 넘긴 나이니 지금부터는 사실 하늘의 운명에 맡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인생의 처음 10살이 사람이 되어가는 시기라 남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자라나는 시기라 하면, 인생의 끝 10년도 남의 도움을 받아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해 가는 시기지 않을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혼자 태어날 수 없고 홀로 죽을 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우리 부모의 시대가 이제 나의 부모가 아닌 노년의 시대로, 나와 아내는 사회의 중년으로 완전히 접어들었음을 깨닫게 된다. 10년이 지나면, 큰 조카가 대학교를 졸업하여 어딘가에 취업할 나이라는 사실이, 나와 아내 사이의 두 딸이 청소년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 가깝게 다가왔다. 10년, 2036년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아득히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결혼한 지도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걸 생각하면, 시간은 그렇게 아득히 남은 듯 우리에게 자리잡지 못하고 훌쩍 지나고만 있는 것이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외에는 없다. 더 많은 추억을 머릿속에 남기려 노력하고, 더 많이 함께하며 즐겁게 웃을 수 있는 날들만이 미래에 남겨지기 위해 오늘도 모이고,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비록, 이런저런 일이 겹쳐 전혀 생각했던 대로 단절될 수 없었던 연휴고, 그로 인해 머릿속의 피로감은 더욱이 쌓여 가시지 못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의 현실은 깨닫게 되었으니 좋은 연휴라고 봐야 할까. 나의 위치가, 아이에서 성인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힘을 내야 할 시기에 추진력을 잃고 잠시 앉아있어야 함은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도 머리로는 얼른 털고 일어나 발걸음을 앞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납덩이처럼 무거워진 눈은 쉽사리 앞을 향하지 못한다. 입 밖으로 나와야 할 말이 안으로 돌고 돌아 무겁게 스스로를 짓누르는 시간에, 다행히 손으로나마 풀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래도, 적어도 시간의 흐름을 놓치고 있지는 않으니까. 일어설 것이다. 빠르지 않더라도 다시 일어서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최선을 다해 그 흐름에 올라탈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후회를 남기지는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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