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그리고 또다시 말
긴 연휴, 길었지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절대로 쉬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 긴 연휴가 끝나고 난 뒤, 스스로 가둬놓은 잔잔한 호수를 깨고 나가야 했던 문 밖의 어지러움.
웃음소리, 농담, 실없는 안부인사, 걱정인지 아닌지 가끔 알 수 없는 묘한 눈초리, 나의 작은 성에서 나와 마주해야 했던 바깥은 지독히도 따스했지만, 차가웠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엷게 띤 웃음으로 지나가는 것뿐.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하지만 이미 뿌옇게 뒤덮인 머릿속 사고는 갈 길을 잃은 채로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멈춰, 지금이 멈춰야 할 때야. 하기 싫잖아, 그냥 다 포기해 버려. 그만두면 된다고. 악마인지 천사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웃음소리.
그러나 그 유혹이 채 귓가에 당도하기도 전에 나는 부름 받는다. 나에게 부여된 여러 이름 중 하나로, 누군가는 나의 직급을, 누군가는 나의 영어이름을, 누군가는 이름도 없을 단순한 소리 하나로, 그리고 누군가는 가족의 이름으로.
나의 소리는 다행히도 그렇게 오늘도 내 안에 닿지 못한 채로 페르소나 밖에서 씩씩대며 서성이고 있다. 마치, 오늘은 차지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분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의 숨결. 나는 혼자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앞길을 그저 걸어가는 이 발걸음이 이리도 생각보다 고된 길이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날개가 있었다면, 하늘 위로 날아갈 수 있었다면 나았을까. 하지만 목적지가 없는 비행이라면 결국엔 정처 없이 떠돌다 떨어져 내리겠지. 그러니 날아갈 수 없다. 방향 없는 움직임은 그저 소진에 불과하니.
마음속에 숨겨진 수많은 말들은 입으로, 손을 통해 나오면서 한 겹 억눌린 채로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흉물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주변 사람들을 기괴하게 만드는 모습에 나 자신은 그저 다시 조용히 또 그걸 삭혀내고, 좋지 않은 기억에 하나 더 차곡차곡 접어내게 된다.
아마도 기쁨을 잃어버린 순간은, 정확히 말하자면 기쁨이 사라진 순간이 내게 온 건 아닐 것이다. 나도 분명 즐거움이라는 게 있었던 사람이니까. 단지, 예전엔 슬픔과 우울을 기억할 만한 충분한 경험이 없었을 뿐이겠지.
지독히도 좋은 쓸데없는 기억력이, 내가 진작에 지워냈어야 할 그 모든 경험을 지우지 못하고 길고 긴 반감기로 남아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 기억이 독이 되어 나를 천천히 휘감았다. 잊고 싶은 기억이 무엇일까, 모르겠어 이젠. 적어도 하나는 아니겠지. 또는 이 또한 내가 만들어낸 망상일지도.
기능하고 있지만 그저 움직일 뿐인 나날들. 단련되고 학습된 반사신경으로 그저 세상을 응대할 뿐이지만 지금의 나는 확실히 멈춰 서 있다. 신경 쓰지 못할 거면 옆에 차라리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내심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런 나를 누군가 강제로 잡아끌어서 거칠게 끊어내줬으면 싶기도 하다.
나를 제대로 보듬지 않아 온 과거를 뒤늦게나마 이런 식으로 보답받는 것도 나의 업보겠지. 단단함 속에 안에서 일어난 균열을 보지 않았던 죄. 나를 완성시키는 것도, 나를 망치는 것도 결국엔 나 스스로가 하는 일이니.
뿌옇게 낀 안갯길 사이 속을 얼마나 더 헤매게 될까. 이번 방황은 생각보다 길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눈길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할 정도니. 그래도, 아직은 잠시 멈춰 서서 이렇게 기록할 힘이 있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