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도 녹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봄바람의 기운이 어느새 사르륵 불어와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살며시 간지럽혀 보려 하는 그런 시기가 왔다. 겨우내 단단하게 잠겨 버린, 녹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만년설 같던 뒤덮임이 스르륵 풀려야 했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은 2월 말, 곧 3월을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고 한다면.
그러나 아무리 살갗을 스치는 온도가 따스해진다고 한들, 하얗게 서린 입김 대신 조금씩 활기차게 웃는 웃음소리들로 주변이 메워진다 한들, 나는 여전히 갇혀 있었다. 속이 뿌옇게 얼어 버린 얼음의 빙벽 사이에. 오늘, 나는 그 빙벽에서 나오지 못했다. 어쩌면 내일도,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음이 동해야 할 봄의 시기에 나는 여전히 차가운 겨울 속을 지내고 있다. 본래 추운 계절의 추운 시간에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혹독함 속에 살아가야만 사실은 편함을 느끼는 걸까. 행복하고 싶다고 온몸으로 몸서리치며 말하지만 필사적으로 행복을 밀어내려고만 하는 평범한 날들. 나는, 또다시 가라앉은 생각을 목가적인 환경 속에서 하고 있다.
질식할 듯이 생각의 바닷속에 잠겨 버린 머릿속 언어들이 풀리지 않은 채로 엉킨 실타래공처럼 어디론가 퍼져나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때가 점점 잦아진다. 아무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은 아니지만, 그 말들의 온도가 주변과 맞지 않아 그대로 흩어져야만 하는 걸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의 말은, 공허함으로 상대방에게 남지 않고 있다는 것. 사람이 외로운 것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알아차려지지 않는 자신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 아닐까.
사람의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며 불태웠던 나 자신을 더 이상은 태워버릴 수 없기에, 더 타버리면 나의 존재마저도 불꽃 너머로 넘겨 버려야 할 것 같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붙은 불을 그저 자연스럽게 꺼질 때까지 멈춰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 뜨거움에 몸부림치지만 너는 이제 와서 왜 이 지경까지 혼자 불타도록 내버려 두었냐고 동정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기에 더욱이 안타깝다. 붉은 화염에서 흐르는 눈물 사이로 보이는 건 사실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너는 아마도 걱정하지만 걱정하지 않겠지.
나를 위해서 살았던 적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나에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서 찾아온 포식자적인 삶의 태도로 지내 왔으니까. 나의 만족은 아무래도 좋다. 그 사람이 만족할 수 있다면 나는 그걸 할 거니까. 그러니 더욱이 새로운 자극으로 매일을 채울 수밖에 없던 폭력적인 나날. 더 많은 충격과 자극이 오지 않으면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오늘 너를 만족시켰다면, 나는 내일 너에게 질려 새로운 장난감에 눈을 뜰 테니까.
이제 와서 억지로 뿌리내렸다 한들, 자신을 돌봤던 적이 없으니 지금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게 되면 감당하지 못하는 거겠지. 이제는 도망칠 곳이 없으니까. 예전이라면 간편하게 도망가서 매일 새로운 자극과 사람으로 덧씌우던 도피를 이제는 반복할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아마도 더없이 맞는 말일 거다. 도망쳐 나온 곳에 낙원이란 없다는 점. 나는 나를 마주할 줄 몰랐다. 마주하게 된 시점에선, 이미 수백 가지로 갈라진 파편화된 내가 서 있었으니까.
사람이란 참으로 모순적이지 않나. 그토록 자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나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아 온 사람이라니. 만인에게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받지만 스스로는 자기혐오, 또는 자기애가 너무 극심해 현재의 나를 전혀 감당할 줄 모르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부서진 조각. 손바닥 위에 얼마나 주워 담았는지 모를 정도로 잔상처와 핏고름이 뭉친 딱지는 가실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곳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나를 지켜주고 있을 줄이야.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내가 되찾을 수는 있는 감정일까. 슬프고 우울하기만 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즐겁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은 때로 굉장히 아득하게 느껴진다. 역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자기 자신뿐인데,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할 줄 몰라 오늘도 흔들리고 흔들리며 머리 위로 수백 수천 개의 물음표만 잔뜩 그리며 되뇐다. 나는, 편안해질 수 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