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그 안에서 평안해지리라

무거움과 가벼움

by Karel Jo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적막한 시간이 나를 감싸온다. 그다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봄의 초입, 집 안의 온도는 그저 딱 알맞을 뿐. 채 올라오지 않은 햇빛이 조금씩 가까워져 오는 시간, 조용하게 홀로 있는 그 시간은 하루에 그리 많지 않다.


며칠간 무던히도 스스로와 싸워야 했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입 안에서 씁쓸하게 느껴지는 비릿한 쇠맛, 먹는 것에 대한 식욕의 사라짐, 쉬고 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나의 하루가 조용했으면, 아무도 어차피 나의 안위 따위에 관심 없으면서.


허울뿐인 성공을 매일 그렇게 깨끗이 비워내고 나면 남는 건 공허한 나 자신의 껍데기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돌아오는 집에 그 껍데기를 소중히 여겨 주고, 그마저도 기다림을 마지않는 소중한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날 견뎌주고 있다는 점이겠지.


해야 할 말들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오면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뾰족한 가시가 사람을 상처 입힌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항상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말은 남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남아 그저 낫지 않는 상처를 덧칠해 나갈 뿐.


더 이상 토해낼 한숨도, 창 밖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참아내야 할 눈물도 이제는 정말 바닥이 난 것 같다. 길고 긴 출퇴근길은 평안하면서도 참으로 힘든 고난의 시간. 잊어야 할 일들을 잊지 못하는 지독한 기억력이 그날의 소화되지 않던 감정을 한 순간에 몰아치며 나를 덮어내기에.


깨달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 견디는 삶의 무게가 아무리 나를 짓눌러도 그저 흘려보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이 언제나 내게 주어지기에 그 이상을 감당하려 하는 순간 무너지는 자신을 목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너진 인지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나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 같은 순간 속에서 흐려진 판단력으로는 그저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정신을 차려 볼 때 아무도 없다는 절망감이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겠지만, 그마저도 사실 누군가 없다는 거라기보다는, 이미 두 손이 자유로운데도 눈가림막을 치울 줄 몰라 헤매는 걸지도 모른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 즐겁지도 슬프지도,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사람. 나의 삶에는 리듬감이 부족하다. 유수의 조용함 속에 평안한 내가 어느 순간 폭포가 된 때부터가 문제였을까. 어쩌면 이것부터가 문제일지도,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 나의 이 생각 자체부터가.


어쩌면 나의 문제는 나답지 않음을 나로 포장하려 했던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진정한 나에 대한 끊임없는 환상 속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이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나는 어디에도 없는데, 여전히 망상과 이상의 간극에서 머물러 표류하는 영혼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좋은 사람은 어차피 아니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방해되는 사람만 되지 말자. 하지만 정작 이런 내 생각 자체가 결국엔 방해되는 나를 만들어 타인의 안위를 위협하겠지. 마음이란, 얼마나 제멋대로일까. 이성의 멈춤은 철저히 무시하고 멋대로 결정해 버리는 우울함이라니.


무거움과 가벼움, 무게추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극단적인 움직임 속에 그저 나를 서 있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일이다. 조용한 가벼움 속의 시작이 금세 무거운 시끄러움으로 바뀌는 나의 양면성이 문제인 걸까. 문제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인 걸까.


사고의 늪에 점점 빨려 들어가 스스로에게 잡아먹힌 때도 분명 있었다. 허우적대며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오겠다고 힘들어하며 발버둥 치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나 자신이 휩쓸려가는 기분은 든다. 하지만 예전과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애써 나오려고 하지 않는 점일까. 있는 그대로 두어라. Let it be. 흐름 속에 유영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땅바닥에 발을 디딜 테니까.


정제되지 않은 글의 날것을 쏟아내는 기분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일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이 글도 그 시점에서는 그저 웃어넘길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까. 결국 나는 나의 안에서 평안해지리라. 내가 살아 있는 그 시간 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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