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와 같을 누군가들에게
어느 날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익숙한 톤의 목소리와 나를 꼭 빼닮은 듯한 말투, 나지막이 울리면서 그다지 서두르지 않는 차분함. 소리는 어느 날부터 내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그게 언제서부터였을까,라고 생각하면 이제는 시작이 언제인지 쉽사리 거슬러 올라갈 수 없을 만큼의 아득함으로 멀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내가 체코에서 혼자 살면서 하루에 하나씩 써 내려가지 않았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향수의 답답함이었을 수도, 어쩌면 고등학생 때 야자시간에 끄적이던 끊임없는 어두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걸지도, 그것도 아니면 내가 글자라는 걸 읽을 수 있던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그저 그렇게 이미 태어나 버린 것일지도.
소리는 언제나 다양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니, 때로는 내가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자기 할 말만 잔뜩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얼굴과, 목걸이와 귀걸이, 그리고 얼굴 표정의 작은 움직임조차 소리는 나에게 말을 건다. 거봐, 지금 네가 한 말 때문에 이렇게 저 사람이 반응하잖아.
그 소리가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나의 응원단이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없어 보이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현실과 진실이라는 두 글자 단어의 이름 하에 그는 언제나 말한다. 아픈 진실이 원래 쓰지만 효과적인 법이라고.
그래서 부정적인 걸까, 나의 처음은 언제나 안된다로 시작하는 걸까.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안될 것 같아서 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 걸 생각하면 그의 소리가 그렇게까지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부정은 앞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가는 발걸음의 위험부담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제거하기 위함이니까.
조심성이 많은 나는 아마도 뾰족한 고슴도치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굴러가고 있겠지. 데굴데굴, 잔뜩 가시를 세운 채로 눈앞에 있는 주변의 위험을 비키라 위협하며 구르지만 사실은 상처 입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의 안전이 더 우선시 되었을 뿐, 그리고 그럴 때마다 소리가 말했다. 어차피 그들도 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위험으로 남아있는 거라고.
사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오랜 시간을 들여와 단단히 걸어 잠근 마음은 이제 나로서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덩굴이 휘감겨 있다. 그저, 그렇게 꽉 잠겨 버린 상자 속에서 도대체 언제 어디서 내가 감춘 어두움이 튀어나와 나를 감싸 안았는지 알 수 없을 뿐.
괜찮은 척 담담히 보내던 하루의 가면 속에 참았던 공허함이 하루의 끝에 몰려와 빚쟁이처럼 청산하지 못한 시간을 청구해 댄다. 슬퍼해라, 그때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만큼 더 슬퍼하라. 분노하고, 욕망을 입에 담지 않은 만큼 더 탐닉하라. 굳게 닫힌 방문 안에서 그렇게 오늘도 한동안 잠들지 못한다. 채 하루도 해묵지 못한 그 감정 때문에, 언제쯤 밤이 나에게 청산의 시간이 아닐 수 있을까.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실은 그저 그래도 된다는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럼에도 듣는다고 별 의미가 없을 걸 알면서도.
날은 어느덧 다시 밝았고, 내 안의 소리도 아직은 깨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소리가 지금 여기에 적혀버리고 있으니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에 짐짓 삐져있는지도 모른다. 출근길 버스가 도착하고 다시 사람들 앞에 서면, 그는 또다시 슬쩍 말을 걸겠지.
나 자신을 마주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언제나 일어나는 보통의 일이었다. 가끔 참을 수 없이 그가 힘들 때, 나는 이렇게 그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