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이야기
내 옆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와 함께 나는 편안함을 느끼며 내 안의 소리와 함께 조곤조곤 재잘거림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내 옆에 다시 한 사람이 더 늘었다. 둘 사이의 나는 조금 더 말이 없어진다. 때로 우다다닥 말을 쏟아낼 때도 있지만 그건 권위를 앞세운 내가 말할 권리가 더 강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오는 것. 주워 담지 못할, 기억하며 후회할 말들이 바닥에 깔린 걸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사람이 늘었다. 사람들이 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눈들이 두 쌍으로 다가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말을 걸어댄다.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 내면의 내가 뭐라 하든 습관적으로 학습된 반사작용에 따라 충실히 괜찮은 나를 앞세워 또다시 저 멀리 나 자신을 뒤로 숨겨 버린다.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그러기에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 속의 아물지 않은 상흔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니까. 오늘의 나는 즐거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즐거울 수 없었다. 사람이 셀 수 없이 늘어난 그때부터는.
나는 그렇게 또다시 단체에서 도망쳤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보직자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당연하게 함께해야 할 자리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 나는 그들의 웃음에 어느새 보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기에. 뭐, 하지만 피차일반이지 않을까. 그들도 곧 나의 부재에 이미 적응했을 텐데.
괜찮지 않은 사람이 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공연한 감정의 오르락 내리락으로 오해당하는 건 지금이 처음도, 앞으로도 없을 일도 아니니까. 피곤해 보인다. 잘 쉬었으면 좋겠다. 힘내라는 그 말들이 귓가에 채 머물기도 전에 이미 저 멀리 사라져 간다. 들리지 않아. 그 말에 담긴 진심이 없으니까.
우두커니 서 있는 저녁길 전구가 고장 난 가로등처럼 나의 마음은 어떨 때 뜨겁게 켜지다, 어떨 때 차갑게 식어버리곤 한다. 그저, 조용히 괜찮게 지내고 싶을 뿐인데 더없이 환하게 빛나며 이정표가 되어줘야 하는 기대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며 억지로 등을 떠밀어대며 가라앉은 수면 위로 나를 올려댄다.
아직 올라올 수 없는데, 충분히 감압되지 않은 삶의 공기 속에 그저 내 호흡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짧고 깊은 한숨의 연속이다. 다행인 점은, 또 일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였구나 하고 그러려니 하는 연민과 동정만 피하면 될 일이랄까. 사실은 그렇지 않고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지만, 어차피 진실은 보이는 대로 믿어지는 것이니까.
사람은 각자의 무게로 서로의 힘듦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다르지 않기에 나의 힘듦이 남의 고통보다 무겁거나, 아프거나 하는 걸 재단하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 것이다. 누구도 알아줄 수 없고, 알아줄 필요도 없는 나 혼자만의 춤사위와 작은 몸부림 속에 간신히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조용하게, 그제야 여전히 또 내 안에서 내가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인생의 회전목마, 돌고 도는 즐거움이어야 할 감정은 도착지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유하는 공허함으로 뒤덮여 나를 내리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 이 목마를 멈춰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그저 발을 힘차게 굴러 단단히 뿌리내리면 되는 일일까.
사람 인의 한자처럼 두 사람이 맞대어 버티는 것이 인생과 사람의 본질일 텐데, 나는 버티지 못하고 그저 스러지는 역할인 걸까.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아마도 곧 또다시 누군가에게서 기약 없고 희망 없는 공허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 두 눈앞에 감춰진 괜찮음을 약속하면서.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그러나 같은 시간이 그렇게 오늘도 흐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