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꽃 피는 봄이 오면

마음의 빙벽에 다시 갇히지 않기 위해

by Karel Jo


어느덧 3월의 마지막 날, 내일이면 벌써 4월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시간이라는 장난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다시금 체감하게 한다. 벌써, 올해도 4분의 1이나 지나가 버린 것이다.


어쩐지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그다지 춥지는 않았던 이번 겨울엔, 그래서일까 나의 마음이 더없이 강하고, 단단하게 얼어붙어 버린 모양이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분명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 반사작용으로 나를 다시 저 밑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가만두지 못했고.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그들 앞에 다시 선 나는 분명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괜찮지? 라는 짤막한 물음 뒤에 따라오지 않는 질문들, 사실은 내가 어떨 지는 아무래도 좋은 것 같은 그런 눈빛들. 중요한 건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벌거숭이라도 언제나 왕은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는 법이니까.


그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봄도 어느덧 예고하지 않은 채로 훌쩍 다가와 겨울철 한기를 한껏 날려보내고 있다. 살며시 봄비를 뿌리며, 버스 차창 밖에 알알이 새겨지며 슬쩍 말을 건넨다. 이제,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가볍게 밖으로 나와 지금을 즐기라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눈에 띄게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졌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금에도 기온은 고작 10여 도, 어떤 의미로도 춥다ㅡ라고 말할 수 없는 따스함에 사람들의 겉옷도 두꺼운 코트와 패딩에서 가벼운 점퍼로, 자켓으로 변해간다. 나도, 그렇고.


옷의 무게는 그렇게 가벼워졌고 뺨을 스치는 온도는 점점 올라가지만 어쩐지 나의 마음 속은 그저 더 무거워져 가고만 있다. 마치 무거운 납 한덩이를 들이마신 사람처럼, 끊임없이 생각에 중독되어 나 자신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손을 뻗어 하늘 위를 가리켜 봐도, 나의 하늘은 아직도 바다 밑에서 아득할 뿐이다.


어째서일까, 왜 그렇게 쓰고 또 쓰고, 토해내고 또 토해내도 해묵은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 나에게 아직 풀리지 않는 수많은 물음표가 나의 대답보다 더 빠르게 생겨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끝난 일을 그저 집착적으로 모두를 감내하여 곰씹어대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사실은 나는 괜찮지 않은 상태가 더 괜찮은 사람인걸까.


나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지 않은 감정이다. 필요를 누군가에게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가 특별히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자신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성공적이고, 귀감이 될지도 모르는 위치에 있지만 그런 나 자신이 자랑스럽지 않으니까. 되고 싶은 나는 언제나 저 멀리 있기에.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이 왜? 를 같이 고민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고민이 기꺼이 나눌 고민이 아닌, 아픔을 나누면 아픔이 둘에게 갈 뿐이기에 언제나 주저하는 걸지도 모른다. 남이 불편한 것은 언제나 최우선이지만, 나의 아픔은 항상 최후방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견디고 견디다, 무너지지 않을 지점에 간신히 내밀고 마니까.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의 상태가 그렇게까지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도움을 받으면 그리 오랜 시간 동안 머물지 않아도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에도 빙벽에 나를 얼려 가두게 되면 어쩌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무거워진 마음이 그저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


오늘의 봄비가 지나면 꽃봉오리가 겨울을 견디다 하나씩 피어오르기 시작하겠지. 내 마음 속에 있는 나도 모를 희망의 씨앗도, 그렇게 싹터 올라 나를 깰 수 있을까. 언젠가, 꽃피는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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