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나를 바라보는 시간
추운 날이다. 봄이 온 지 오래지만, 비록 어느덧 4월이 중순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지만 꽃샘추위는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 곁에 살며시 다가와 마지막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나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듯이, 곧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다짐하는 듯한 입김이 매일의 아침을 새하얗게 만들어주는 그런 순간.
그런 순간에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을 몸서리치며 거부하면서도 이미 그 탈을 뒤집어쓴 채로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 아닐까. 사실은 이미 그 어두움 자체에 잡아먹혀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르다고, 나는 아직 그와 다르다고 뒤덮인 어두움 저 편 어딘가에서 작게 소리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나에게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때는 점점 늘어만 간다. 어제의 내가 조금 요령을 피워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면, 오늘의 나는 그 어제의 나를 책임져야 한다. 내일의 나에게 미룰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앞선 죄책감과, 마음을 거세게 옥죄는 책임감인지 속박인지 모를 방어기제 속에 그런 생각은 솟아오르기 전에 이미 덮여버리고 만다.
누군가는 그랬다.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망가질 까봐 걱정이 된다. 그러나 그 걱정은 반은 틀렸어. 사실 이미 나는 진작부터 부서진 나를 그저 얼기설기 붙여내어 간신히 서 있는 상태일지도 모르겠거든. 나는 이제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 마치 반충된 핸드폰 배터리처럼, 매일의 나는 그저 충방전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완충이라는 느낌은 진작에 잊어버린 채로.
결정과 책임이 어깨에 주어졌던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다른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바꿔보자는 마음이 아닌,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옳은 일을 언제나 관철할 수 있는 곧은 마음가짐을 유지하자는 마음이었다. 일은 언제나 선명하게, 정해진 방향으로, 정리된 상태로 이끌어 가자는.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없다. 마음 한 켠 어딘가에는 분명히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 또한 결국 내가 싫어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를 너무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을 때를 깨닫는 순간 막기 힘든 자기혐오를 한동안은 견뎌내야 한다. 나라고, 결국은 다르지 않다.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아질 수 있는 걸까. 나는 다를 거야.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야라고 수천 번이나 다짐하면서도 수만 번이나 결국엔 그 어두움을 뒤집어쓴 지도 이미 셀 수 없는 날들이 지났다. 정의로운 마음이지만 어느새 그의 어두움에 뒤덮인 채로 나도 간신히 눈빛만 앞을 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래도 이 모든 순간을 내가 이겨낸다면,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내가 싫어하던 그 모습을 극복하고 본래 나의 생각을 관철하는 강한 정신을 갖게 될까. 아직은 요원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선의가 선의로 들리지 않기 시작하는 요즘에는 더더욱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저 한 발 한 발 걸어갈 뿐, 사람은 제각각의 정의가 있다. 남에게 설득시킬 정의가 아니기에 스스로가 잃어버리면 자신은 결국 없어지고 마는 것. 그런 점에선 아직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생각 속에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발이라도 더 내디뎌 보는 것뿐. 닮아가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