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8시간을 내리 자며 느낀 감상
코로나가 대유행한 시점에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재택근무는 우리에게 일상이 되었다. 현 직장은 코로나 유행의 중간 지점인 21년 8월 경에 입사했는데, 당시 사무실엔 거의 새로 입사한 나와, 내 업무를 봐주기 위해 나오셨던 팀장님 외에는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했기 때문에, 회사 동료들의 얼굴과 이름을 연결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린 기억이 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 유행이 종식되고, 재택근무가 필수가 아닌 권고로 줄어든 지금, 여전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월 5회 재택근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는 있지만, 곧 오는 봄에 사무실을 옮기게 되면 전사적으로 다시 재택근무를 폐지하겠다고 공지했다. 실상,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대부분 재택근무를 허용하던 회사들이 대부분 사무실 복귀를 공지하여 대면근무로 다시 복귀하고 있을 것이다.
재택근무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라는 말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재택근무라는 근무형태는 절대 일반화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공장, 식당, 택배, 건설 등 현장에서 근무해야만 하는 근로자에게 재택근무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것이며, 그러다 보니 재택근무는 일부 사무직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로 비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회사도 구미에 공장이 있지만, 현장직과의 관계 문제로 인해 공장의 사무직은 생산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서임에도 재택근무가 허용되지 않았다.
다행히 사무실이 서울에 있는 경기도민, 그리고 Commercial Finance라는 재무팀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온전히 재택근무의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결산이라는 바쁜 주간이 끝난 지금, 오랜만에 재택근무를 하며 스마트워치에 최고의 수면을 기록했다는 알람을 받으며 일어났는데, 중간관리자의 입장에서 겪은 재택근무의 득과 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거주하는 경기 남부인으로서, 서울이란 애증의 도시다. 신분당선이 있는 수지구 정도에 살았으면 모르겠지만 처인구에서 서울이란 강남권을 가기 위해 1시간 반 정도는 기본으로 생각하고 가야 하는 곳으로, 사실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체력의 15% 정도는 깎인 상태로 하루의 업무를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무직에게 재택근무가 주는 최고의 장점은 무엇보다 통근시간에 대한 절감일 것이다. 나만 해도, 사무실에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하는 기상시간을 2시간 이상 뒤로 늦출 수 있다.
퇴근 과정에서도 6시에 퇴근해서 8시에 도착하는 시간을 단순히 노트북을 닫고 방문을 나와 "아빠 일 끝났다!"라고 외치며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출퇴근 시간에 들어가는 체력을 온전히 아낄 수 있어 하루가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는 건 최고의 장점일 것이다.
또한, 두 딸의 아버지로서는 육아에 대한 부담이 조금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재택근무 또한 근무의 한 형태기 때문에 근무시간은 온전히 근무에 집중해야 하겠지만, 일단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최소한 남는 시간에 육아에 동참할 수 있고, 그리고 점심시간 등을 활용하여 아이의 병원진료를 보거나, 아이를 데리고 오가는 일도 도울 수 있게 된다. 아내도 내심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장점 외에 단점도 존재하는데, 가장 큰 단점은 소통의 비효율성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이상 사람과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소통은 대부분 메신저로 이루어지거나, 화상회의를 통하게 된다.
그러나 화상회의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도 카메라를 켜지 않고, 화면공유를 하거나 목소리만 듣기 때문에 상대방이 지금 내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온전히 '목소리'하나에 걸고 느껴야 하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지금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어떤 반응인지를 알아채는 것이 때로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장점에서 말한 육아를 도울 수 있다는 건 때로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나이가 어린 딸들을 데리고 있는 나로서는 중요한 회의를 할 때 방문을 두드리는 갓 돌이 지난 둘째를 막을 수 없다. 회사 동료들은 딸이 어리기 때문에 이해하지만, 집중해야 할 시점에 방문을 쿵쿵 두드리는 "아빠아~!!"소리가 당혹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때로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개인의 이런 장단점은 분명히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간헐적으로 재택근무를 허용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그리고 재택근무라는 근무형태는 회사가 직원에게 보장해 줄 수 있는 일종의 복지 형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더더욱이나 재택근무를 없애고 대면근무를 도입하나 싶기도 하다.
중간관리자로서 재택근무 폐지에 대한 회사의 의견을 들었을 때,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로 인해 업무 비효율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고,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업무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있고 이로 인해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재택근무 중 '월급루팡'질을 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이 있다는 말이었는데, 글쎄, 이해가 가지만 동감할 수는 없었다.
월급루팡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대책만 잘 세운다고 하면, 모두가 서울로 쏠려야만 하는 교통체증이라든지, 서울로 모이면서 발생하는 지방 공동화라든지, 서울 선호에 따른 서울 집값 상승이라든지, 긍정적인 내용은 분명 있지 않을까?
재택근무가 일부 사무직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형태라고 해도, 이제는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사무직이 그렇게 적은 숫자는 아닐 테니 분명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는 있지 않을까.
물론, 중간관리자 입장에서도 재택근무하는 팀원들의 업무 평가나, 업무 회의 등이 용이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전면 재택근무가 아닌 주 1회 정도의 재택근무라고 하면, 나는 충분히 지친 직장인들에게 한 번씩 재충전을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주 4일제도 좋지만, 생산성을 유지해야 하는 측면에서는 주 1회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그러면서 점진적으로 고도화된 근무형태를 도입해 가는 게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