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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고단해도 집에 가는 이유

세상의 모두가, 그저 조금 더 행복하기를

by Karel Jo


재무회계팀에서 일하는 그날부터, 휴일이나 공휴일 출근을 월초에 하는 것은 그렇게 어색한 일이 아니다. 말만 들어도 질색하게 되는 '결산'이라는 두 글자, 또 다른 말로 '마감'이라고도 말하는 이 행위는 이름만 들어도 한숨이 나오는, 내가 글로도 몇 번 다뤘던 그런 주제다.


5월 2일에 임시공휴일이 지정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그래서 우리 회사는 굉장한 고민에 휩싸였다. 미국 본사는 지사의 휴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기에, 석가탄신일 대체휴일에 실적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임시공휴일이 오면, 한국에서 받아야 하는 증빙서류들을 대체휴일 이후에나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재무회계팀에서 가장 마음 편안한 서류는 도장이나 날인이 완료된 계약서요, 가장 심란한 서류는 효력이 없는 견적서거나, 초안 상태의 문서다. 그렇기에 다른 직장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임시공휴일을 피하길 간절히 바랐고, 다행히도(?) 2일 날 대부분의 마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통상 영업일 기준 3일에 끝나는 결산 일정이라, 2일 차까지는 보통 밤늦게나 되어 퇴근하게 된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들어가게 되면 두 딸은 이미 잠들 시간이었기에, 시끄럽게 열리는 현관 중문을 최대한 조심조심 열고, 화장실 물도 살짝만 틀어 얼른 씻고 다음날 아침에 바로 다시 출근하는 그런 루틴이 나의 평범한 결산 일과다.


그러다 이번 달은 어쩐 일인지 밤 아홉 시 정도 되는 시간에 대략적인 전표 마감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팀원들의 업무 능력도 많이 올라온 것도 있을 것이고, 사전에 교통정리를 마쳐놓은 덕도 있겠지만 어쨌든 더 늦을 이유가 없는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택시를 잡아 각자의 집으로 향했고, 나 또한 아내에게 10시 반 정도에는 도착할 거라 말했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은 10시 정도기에,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야근할 동안 집 정리도 제대로 못 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 충분히 없었을 아내에게 조금의 휴식이라도 줄 수 있겠거니 하고 택시 기사님이 조금 더 서둘러 주시기를 바라며 도착한 집 현관의 비밀번호를 열고 살며시 들어가자, 닫힌 안방의 방문도 조심스럽게 열렸다.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자기의 애착인형인 토끼 인형을 안고 나타난 부스스한 첫째였다. "아빠 이제 왔어" 하고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손도 채 씻지 않았지만 무릎을 꿇고 앉아 나에게 오라고 두 팔을 벌렸고, 그 찰나에 둘째 딸도 우렁차게 으으으 하는 소리를 내며 언니를 제치고 내 무릎에 앉았다.


그런 두 딸을 보고 피곤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아내였다. "거의 잠들었는데, 너 오는 소리 듣고 다 아빠 본다고 난리 쳐서 나왔어" 투정 섞인 소리였지만, 아내도 이 귀여운 상황에는 어쩔 수 없이 웃음 지을 수밖에 없던 모양이다.


숙명이라지만 남들 쉬는 연휴에 일해야 하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저녁 먹을 때 사둔 회사 근처의 유명 빵집의 롤케이크를 건네며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아이들의 등을 토닥이고 다시 꿈나라로 돌려보낸 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으면서 나 또한 입가에 살며시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참 감사한 일이지 않은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보고 아직 반가워할 가족들이 있다는 것.

그 가족들이 기꺼이 나의 노동을 고생으로 여겨준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가족을 위해 내가 좀 더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것.


아직도 가족이 뭔지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하고 있게 되었다.




다음 주에 있을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 대체휴일이라도 지키기 위해, 비록 봄비가 추르륵 내리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나는 지금 결산의 끝마무리와 최종 보고서를 쓰기 위해 다시 회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하고 있다. 나중에 대체휴일을 받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주말에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점은 여전히 매번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근길 끝에 만날 나의 가족들을 위해 오늘도 조금 더 힘을 낼 것이다. 언젠가 누나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춘기가 오면 방문을 굳게 닫아걸고 '용건은 카톡으로'라고 방문 앞에 나의 출입을 금지시켜 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때를 위해 지금 더 힘껏 이 행복을 끌어안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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