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믿기지 않는, 한 사람의 성장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
위로 다섯 살, 그리고 세 살의 나이터울을 가진 누나 두 명을 남매관계로 갖고 있는 나는, 기억상으로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나 되어야 아마 내 방이 따로 만들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넉넉하지도 않은 집이었기에 방 3개가 나올 정도의 크기의 집에 살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누나들은 작은 방을 같이 썼고 나는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냈다.
그러다 방 3개짜리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부모님 방, 누나들 방과 내 방으로 방주인이 정해지게 되고, 10살 남짓 되는 때 그렇게 빌라 한 켠의 방에 나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내 공간이 생겼다고 해도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내 취미는 예나 지금이나 독서였기 때문에 방에는 침대, 책상, 그리고 책장만 있었지만, 그때는 내 독립적인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어른이 된 기분이 들곤 했었다.
자연스럽게 방이 생기면서 나는 더 이상 부모님과 같이 자지 않고 혼자 자게 되었고, 그때에 이미 나이가 꽤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게 부모님 품을 떠날 수 있었다. 가끔 가족들과 함께 무서운 영화를 빌려 안방 티비로 보거나, 토요 미스테리 극장 같은 프로를 볼 때에는 안방에서 다 같이 자는 날도 있곤 했지만, 초등학생인 나와 중학생인 누나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각자의 공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 부모님이 되어 버린 지금, 나는 아내가 첫째 딸아이 방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할 때부터 약간은 시기가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조차도 어린 나이에 방을 혼자 써본 경험이 없기도 하거니와, 주변 직장 동료분들이나 선배님 말씀을 들어 봐도 초등학교 아들도 아직도 같이 잔다며 푸념 아닌 푸념 하시는 분도 있었고 하니,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분리수면을 그렇게 일찍 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지 않나.
그래도 평소에는 별 주장이 없던 아내가 그렇게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는 데 그걸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분리수면의 장단점을 찾기보다는 분리수면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먼저 조사해 보았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아이가 어린 나이부터 따로 잠드는 것은 사실 특별한 장점이나 단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표적인 이유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부모의 수면 질 향상’이라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아이와 같이 자면서 잠을 푹 잘 수 없는 부모의 의지도 강하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내가 어릴 때부터 자기 방을 주고 분리수면을 시키려고 했던 건 내 생각에는 ‘문화의 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들과 함께 자는 모습이 너무 흔한 모습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 흔한 광경이, 혹시라도 모를 수면 중 아이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해몽이 좋은 핑계도 있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책을 읽어주고 이불을 덮어주며 잘 자라고 굿나잇 키스를 받으며 자란 아내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다문화 가정의 장점이라고 하면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내의 말을 따라 새 집으로 이사한 뒤에는 5살 딸아이의 방을 좋아하는 캐릭터로 멋지게 꾸며주고, 좋아하는 색깔의 침대보와 이불로 깔아 둔 잠자리와 각종 장난감, 인형 등 아이가 편안하게 느낄 모든 환경을 갖춰 주었다.
아이는 그런 내 모습에 더 신이 났는지, 한술 더 떠서 어디서 뭔가를 찾아내어 “아빠, 난 벽지를 이걸로 바꿔서 온통 시나모롤로 꾸몄으면 좋겠어”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매일 아이에게 네댓 권의 동화책을 읽어주고, 등을 긁어주고 잘 자라는 인사를 마친 뒤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이불을 잘 덮어주고 나오면 분리수면 루틴의 1단계 완성이다.
물론, 아직 통잠을 깊이 자지 않는 아이는 내가 아침에 출근길에 방문을 열었을 때 자기 방에 없는 걸 봐서는, 아마 새벽 세네시쯤 일어났을 때 다시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 같은 침대는 아니더라도, 같은 공간에 마련된 자기의 세컨 침대에 누워 자곤 하는 모양이었지만 일단 자기 방에서 잠드는 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요즘, 어느 날부터 출근 전 아이의 방문을 열어볼 때마다 여전히 자기 침대에 누워 곤히 자고 있는 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 아침에 회사 갈 준비를 마치고 딸아이 방에 있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넥타이도 정리하던 나로서는 딸이 자고 있는 걸 발견하자 다시 화장실로 돌아가 출근 준비를 마쳐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많이 피곤했겠거니 하고 며칠 뒤면 다시 자기 엄마 방으로 가겠지 하던 때가 어느덧 일주일이 넘게 쭉 자기 방에서 자고 일어나고 있는 날이 이어지는 중이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는 길에 반갑게 맞아주는 나를 보며 아이는 요새 자랑스럽게 “아빠, 나 어제 내 방에서 쭉 잤어!”하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점점 내 아이가 어엿한 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벌써 몇 년도 더 되었는데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란 이름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아이는 이렇게 하루하루 나를 떠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그 시간을 이제는 나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