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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은 변해도,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기에

아이 둘과 함께 자란 아내의 손에 새로운 반지를 고르다

by Karel Jo


한국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하면 내가 미혼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먼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2018년 9월 말, 그렇게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나라 카드사들의 엄청난 서비스 정신을 겪었다.


아내가 미리 봐둔,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 있다 하여 결혼반지는 우크라이나에서 맞추기로 한 우리는 금은방에서 이 반지 저 반지를 둘러보다, 아내의 취향에 꼭 맞는 반지 두 개를 골라 삼성카드로 결제했다. 아마 그때가 현지 시각으로 오후 세 시 정도였으니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늦은 밤일 텐데, 곧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삼성카드입니다. 혹 고객님 본인이신가요?"


"아 네, 본인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방금 우크라이나 어딘가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결제 건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어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지금 우크라이나에 계신가요?"


"아...! 네, 제가 결제한 건입니다. 결혼반지를 사야 해서요"


"아~ 네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확인되셨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정말 놀랄 만한 서비스 정신 아닌가, 한편으로는 동시에 정말 이렇게 치밀한 확인 과정 속에서도 사기를 치는 스캐머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작은 해프닝 속에, 어쨌든 결혼반지는 나와 아내의 손가락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연인관계나, 결혼했음을 상징하는 증거는 왼손 약지에 낀 반지겠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결혼반지를 오른손에 끼는 문화가 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대략 정교회에서 오른손의 상징이 하나님의 권능과 축복이기 때문이라고, 성호를 오른손으로 긋는 것처럼 오른손이 주는 의미가 깊기 때문에 오른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도 문화와 관습에 따라, 한국에 있을 때는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우크라이나 처가에 방문할 때는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번갈아가며 끼고 있다. 오른손과 왼손의 사이즈가 미세하게 차이 나서 오른손에 낄 때 약간 더 헐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혼으로 오해받는 것보다는 더 나은 일 아니겠는가. 김칫국 같은 소리긴 해도.


어찌 되었든, 이렇게 양손에 번갈아 반지를 끼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든 우리 사이였다. 그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엔 아내를 똑 닮은 두 딸이 함께하게 되었고, 어느 날 아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둘째 딸 낳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이제 반지가 진짜 손에 안 맞아"


솔직히 나는, 아내가 살이 찐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눈에 담기도 끔찍한 벌레로 변신한다 하더라도, 어느 모습이든 아내를 사랑할 자신이 있다. 물론 벌레라면 바구니 안에 가둬놓고 만지지는 않고 살겠지만, 나에게 겉모습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다 한들 임신 후 다이어트에 성공해 한껏 기분 좋았던 아내에게 "손가락은 원래 안 빠져"같은 위험한 위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건 그저 아내의 손가락을 다시 재고, 새로운 반지를 몇 개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비록 손가락의 크기가 달라졌다 한들, 그 손가락이 커진 이유가 두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하였음을, 자기 자신의 정신도 온전히 차릴 수 없을 때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며 스스로를 붙잡기 위함이었음을,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때에 나를 옆에서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었음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달라진 손의 크기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왔기에, 나는 이제 아내에게 또 한 번의 반지를 선물해야겠다. 앞으로 우리의 시간이 더욱 단단히 묶여, 매일매일 힘든 순간이 있어도 서로를 믿고 이겨나갈 수 있는 또 다른 약속의 증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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