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저녁이었다. 퇴사를 노래하면서도 투덜거리며 일찍 퇴근하고 막, 노트북을 켜던 그런 순간이었다. 핸드폰에서 낯선 이름이 떴다. 여전히 주소록의 한편을 차지하고, 카카오톡에서 가끔 사진으로만 안부를 확인하던 친구의 이름이었다.
예전 친구라고만 지칭하기에는 그녀와 나는 꽤 친한 사이였다. 주변에서도 베프라고 믿고, 나 자신조차도 베프라고 믿는 그런 사랑하는 존재. 대학 시절의 반짝이는 모든 것을 같이 향유했고 추억의 상당부문을 차지하는 존재 자체였다.
떨어질 수 없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다가 그녀는 휴학을 하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녀가 휴학을 한다고 했을 때 잠시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졌다. 나도 휴학을 하고, 같이 학교를 마치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아오를 정도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대학을 갈 수 있게 해주었던 부모님이 감지덕지였기 때문에 취직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달고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제 배낭여행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그녀의 상황도 마냥 부럽기만 했었다. 아르바이트하는 동안의 생활비, 숙박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상당히 내성적인 성향이었던 친구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데, 나는 기뻤다. 말이 거의 없고, 항상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제 선택을 뒤로 미루는 그녀였었다. 무엇이, 어떤 것이 그녀의 성향을 바꿨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무언가 제 스스로 원하고 실행하는 그녀를 보면서 딱딱한 껍질을 한 겹 겨우 부수고 나온 여린 작은 새를 보는 것 같아 응원하고 지지했었다. 그녀 안의 일렁이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를, 불새처럼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진정 바랐다.
겹겹이 쌓여가는 시간의 레이어들, 조금씩 달라지는 삶의 나침판을 탓하며 우리는 연락이 점차 뜸해졌다. 아이를 키우고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고, 새로운 직장을 얻는 동안, 그녀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것 같았다. 사진 모임에 들어가서 출사를 나가고, 직장을 얻고, 전시회를 가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갔다.
어쩌다가 동기가 결혼을 하거나, 돌잔치를 하는 경우에나 겨우 만나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헤어졌다. 대학 시절에 나눈 인연의 실은 깊고 굵어서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자신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와 인연을 지속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타인의 삶을 읽어나갈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필요했다. 그녀의 연락이 낯설었던 건, 누구보다도 일찍 결혼을 택했던 나와 친구들 중 가장 늦게까지 미혼이었던 그녀와의 삶의 테두리가 너무나도 멀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핸드폰에 나타난 그녀의 연락은 순간, 나를 멈칫하게 했다.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있구나 싶기도 했다.
“나, 결혼해.”
“...결정된 거야? 그럼, 축하해. ...그런데, 왜?”
사랑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인 지천명이다. 하늘의 명을 깨달은 시기가 된 친구는 그래서 결혼을 결정한 걸까?
일찍 결혼한 나는,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그녀의 삶을 모른다. 그녀의 삶을 짐작하지 못하므로, 그녀의 결정을 논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혼한 삶을 충분히 아는 나는 응원하거나 지지하지는 못했다.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눈부셨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명 아래서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행복한 미소를 줄곧 입가에 매단 그녀가 청초한 시절의 대학생처럼 싱그러워서 나는 슬펐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날아갈 듯이 아름다운 그녀의 드레스가 너무 눈부셔서,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 있던 나는 감히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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