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끝을 보며 걸었다. 길은 분홍색 혹은 황갈색이다. 둥근 리본플랫이 긴 치맛자락 아래로 빼꼼 얼굴을 내밀 때마다 버스정류장을 향한 거리는 줄어든다.
강이 근처에 있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짙은 안개가 종종 거리를 덮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로시가 걷는 길처럼 노란 길은 아니지만, 화사한 분홍빛 길과 청록색 플랫, 흰 안개가 좁은 시야 안에 들어섰다.
나무에서 떨어진 황갈색 잎사귀들이 폭신하게 깔려있다. 이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마른 나뭇가지들은 제 몸을 흔들며 목화 같은 하얀 눈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23년을 완벽히 마무리하려고 부지런을 떨다가 예상치 못하게 기존에 하던 것들이 휴지기를 맞았다. 한해를 눈부시게 만들었던 글쓰기 팀에서도 잠시 나오고, 글을 쓰며 피드백을 주고받기로 했던 팀도 멈춤 표지를 걸었다.
짧은 단편소설을 12월까지 완성하려는 계획만이 메모장 귀퉁이에 남았다. 짬짬이 브런치든 블로그든 계속 써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정말 마음만 먹은 건 아니었다. 마음을 먹으면 보통 실행이 따랐는데, 왠지 번아웃이 온 것처럼 느슨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던 나는 담요를 온몸에 둘둘 말고, 눈을 뜨기를 반복했다. 이불속 다리 안쪽에 고여있는 뜨근한 온도를 느리게 만끽했다. 그사이 짧은 명상을 하다 보면 다시 잠들기 일쑤였다.
나름 열심히 살았으니, 조금 천천히 마무리해도 좋지 않겠나 싶은 게으른 마음도 들었다. 후회할까. 후회하지 않을까. 천천히 여유를 부리는 데에도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만 같고, 멀리 뛰어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참 뒤처진 것만 같고, 나만 나무 아래 낮잠을 자는 토끼가 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조급한 마음은 무언가를 빠르게 성취하도록 도왔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밧줄로 동여매듯이 조이기도 했다. 불안감이 솟구칠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지만, 자꾸 흐트러졌다. 성취하고자 하는 욕심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초라한 여린 알맹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여러 겹으로 단단하게 무장해 왔다. 토익점수, 자격증, 브런치 작가, 어학연수, 러닝, 외국어 공부 등등.
제 초라한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정하는 건 슬픔이 목끝까지 차오를 때나 가능했다. 힘들어야 겨우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본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 작동된 것인지를 헤집어 본다. 축축한 물기가 얼굴을 흠뻑 적시고, 허덕거리는 흐느낌을 겨우겨우 억누를 때야 되어서야 결국.
내가 걷는 길이 오즈의 마법사 속의 도로시처럼 명확한 목적이 없다 하더라도, 존재 자체가 끝날 때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촘촘히 엮어낸 훌륭한 태피스트리는 될 수 없더라도 어설픈 목도리는 뜰 수 있으니까. 엉성한 목도리라도 코끝을 숙이면 충분히 따뜻할 수 있으므로.
그러니까, 괜찮다. 조금 숨을 가다듬고, 나무 아래에서 그늘을 즐겨도 정말 무방하다.
#나무아래토끼
#괜찮다
#쉬어가도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