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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거나 끝나고 있는

by 알펜


친구때문에 마음을 졸인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제일 좋은 그런 시절이니까.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 상처, 좋아하는 아이, 부수적으로 다가오는 반짝이거나 그늘진 감정을 비밀 얘기하듯 친구에게 속삭이곤 했다.


마음 둘 곳이 한두 사람 정도는 필요했다. 그곳에 닻을 내리고 교실을 자유롭게 수영하듯이 유영했다가 다시 항구로 돌아가곤 했다. 반 친구들과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하곤 했지만, 나만의 친구는 필요충분조건의 필요조건처럼 존재해야했다.


나에겐 두 명이 필요조건이었다. 세 명이 집합이었던 셈이다. 인간관계에서 안정적인 사각형이 아닌 삼각형은 불안정했다. 천칭은 조그마한 깃털의 무게에도 기울기마련이었으니까.


어느 날 두 명이 말다툼을 했다. 왜 싸운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둘이 싸우고 그 사이에 낀 나는 곤란했다. 한 명과 지내자니 다른 한 명이 서운할 테니까.


사실 마음의 추는 언제나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서 가벼운 추를 가진 친구와 밥을 먹었다. 더 마음이 여린 듯한 친구를 신경 썼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추가 달린 친구는 어른스러우니 나를 이해해주려니 여겼다. 나도 아직 미숙한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그대로 멀어질 줄 예상치 못했다. 아마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싸운 건 둘이었는데 기억이 고인 사람은 나였다. 잊지 못하고 미련을 떠는 사람은 내가 되었다.


흐르지 못한 마음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멈췄다. 중학교를 지나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마음이 남았으니 조금은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마음을 털어버리려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그 친구에게 고백하듯이 털어놓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미안했다고.


서로 어려운 가정사를 털어놓고 사이시옷처럼 의지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애가 한 번씩 생각났다. 낡은 사진첩 속의 추억처럼 기억은 닳았지만, 미련은 남았다.


사람이 좋다. 따뜻하고 바른 사람이면 끌렸다. 속이 깊고 배려심이 넘치면 친해지고 싶었다. 좋아해서 잘해줬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고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오다 주웠어라는 태도로 쿨하게 던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사이가 멀어지더라도 이제 마음은 고이지 않았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다정한 행동이 충분할 만큼 뒤따랐으니까. 할 만큼 했으니 아쉽지 않았다. 상대방이 나를 기억할 때 좋은 기억을 가졌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마음에도 흐르는 길이 있다. 시간이 흘러 사막처럼 건조한 관계가 되더라도 마음이 흐른 흔적은 남았다. 여전히 내 마음은 흐른다. 고여서 자국이 남지 않도록 곰살궂게 그 길을 토닥여 본다.



#시절인연

#필요충분조건

#인연의끝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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