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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이 있나? 없나?

by 알펜


예약 날짜는 항상 봄쯤이다. 40이 넘어서부터 시작된 건강검진은 2년에 한 번이 아닌, 매해 검진을 받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한해는 정부지원금으로, 나머지 한 해는 온전한 내 돈으로 치른다. 하지만 종합검진으로 이어진 검사는 결국은 지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부담하게 된다. 집안의 암 유전력은 무시할 바가 못 되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검진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기만 한다.

일을 하다 보면 예약된 날짜를 변경하긴 일쑤다. 5월에 예약된 날짜는 8월로, 8월에서 결국은 11월로. 한해를 넘기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더 이상 날짜를 미루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날은 휴가를 쓰게 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누워 초음파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간다. 혹은 있는지, 없는지, 별다른 이상은 없는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쩌면 그래서 일을 핑계로 날짜를 계속 미뤘는지도 모른다.

꾹 짠 온기를 가진 젤이 몸에 발라진다. 초음파기계가 슬금슬금 몸 위를 밀고 나가면, 마음속의 두려움이 밀고 들어온다. 틱틱, 사진을 찍는 의사 선생님의 달칵이는 마우스 소리마저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아서 알지도 못하는 검은색 초음파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게 된다.


“이상 없네요.”


문장은 간결하지만, 발화된 낱말은 안전했다. 올해도 다행히 통과다. 그제야 훅,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건강하게 살다가 한 번에 갈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축복 중 하나가 아닐까. 살아온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죽음에 도달하는 거리는 짧아진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낫지 않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평온하고 평화롭게 살다가 죽음에 이르면 좋겠다고 바랐다.

자신의 삶을 태워서 신념을 지키고 일찍 세상을 등지셨던 분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짧은 생을 커다란 횃불처럼 불태우고 영면하신 분들의 삶 그 자체가 영원한 불빛처럼 빛난다고 여겼다. 내 삶을 불사를 정도의 믿음도 뭣도 없는 나는, 제 생마저 내버릴 정도의 열정 그 자체를 선망하는 건지도 모른다.


평범한 인간인 나는, 주어진 고된 삶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거친 풍파, 자잘한 생의 변화, 각종 분란, 가끔씩 도래하는 희미한 행복들을 느끼고, 견디고, 인내하고, 감내하고, 깨닫고, 참아내며 묵묵히 살아내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라고 위로한다.


다시 내년 5월에 검진 예약을 잡았다. 미루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번에는 그토록 두려워하며 받지 않았던 내시경도 더불어 예약해 두었다. 두렵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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