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는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잃어버린 영혼의 조각 중 하나가 지금 내 옆에 있다. 즉, 내가 다니는 회사에 존재한다. 환상적이지 않은가.
그녀를 알아본 건 날카로운 절벽 아래를 기어오르다가 마치 작은 풀꽃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미끄러지기를 여러 번, 이미 진흙이 묻은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과 우연히 조우했다고나 할까.
그때 그녀는 회사를 옮긴 지 막 6개월이 지났었고 나는 겨우 1개월 차였다. 편하게 풀자면, 힘든 상사 밑에서 기가 죽어 쭈구리처럼 바닥만 보다가 우연히 옆을 봤더니 이미 쭈그러져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과 비슷했다.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했다는 연인 스토리는 아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팀에서 구르다가 우연히 같은 팀, 바로 옆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조용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과 옅은 우울이 안개처럼 퍼져 있었다.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내가 온 이곳이 혹시라도 불안정한 파도처럼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눈치 빠른 나는 그때 알아챈 건지도 몰랐다.
건조하고 의례적인 인사 뒤로 슬며시 출근했다가, 소리 없이 퇴근하는 그녀가 꽤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형체가 없는 유령처럼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싶다고 여기는 것 같았으니까. 시간만 지나가라고 애원하는 사람처럼 누적된 짙은 그늘이 발치에 뿌리를 깊게 내린 채로 그녀를 휘감아 흔들어댔다.
며칠째 일이 많아 야근이 잦던 어느 날이었다. 12개를 넘어가는 엑셀 시트에 수치와 함수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뭐, 도와드릴 거 있어요?”
기이하고도 놀랍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말을 건 시간은 그녀가 조용히 사라지곤 했던 퇴근 무렵이었으니까.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곤 하는 마음의 경계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괜찮아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내일 만나요.”
재밌는 얘기가 있다. 과거 노비들이 힘든 일을 서로 도와주면서 사랑에 빠진다고. 힘든 일을 하면서 어떻게 아기까지 낳고 그랬나 싶었는데, 힘들기 때문에 작은 도움이 크게 다가오고 그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한다.
딱, 그 짝이다. 공노비가 서로 기대다가 절친이 된 경우가.
비슷한 이력과 비슷한 나이대, 큼큼 내가 좀 많이 많다, 로 형성된 동질감으로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그 시기를 단단히 버텼다. 목이 조일 것 같은 날에는 메신저로 말을 걸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몇 분 후 따라 나오는 그녀와 함께 사람이 드문 지하 어둑한 복도를 걸으며 고통을 나누다 보면 숨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이 조금 가라앉기도 했다.
모든 건, 상사 탓.
그래, 상사 탓, 회사 탓이다.
아니, 우리 탓인가?
결국, 내 탓이었나?
자신을 탓하는 그녀를 말리고, 내가 문제인가 싶을 때면 그녀가 나를 말렸다.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서로를 반복해서 위로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같은 부서, 옆자리에서 다른 부서 먼 자리로 바뀐 지 이제 1년이다. 자리는 멀어졌어도 업무가 비슷해져서 그런지, 더욱 연리지처럼 서로를 휘감게 되었다. 적응이라는 미명아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텃세를 견디고 살아남은 우리는 단단한 씨앗이다. 바위틈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다가, 이제 겨우 바닥에 뿌리를 박고 조그만 싹을 틔우는 중인 작은 씨앗이다.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빈집의 약속》 -문태준
반짝이는 영혼의 조각 덕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문태준 시인의 시처럼 누군가 내밀어준 작은 손 덕에 독사가 살고 있던 집이 청보리밭처럼 푸르게 넘실거리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나는 다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