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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과 함께한 1년

by 알펜

드디어 수능일이다.

작년에 수능에 실패한 아이가 재수를 결정한 지 1년이 되어간다.


길게만 보였던 1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느리게 흘렀던 봄을 지나, 폭염에 헉헉대던 여름을 보내고 나니, 빽빽하게 초록 잎사귀를 매달았던 은행나무가 황금처럼 잎을 털어내는 11월이 성큼 다가왔다.


작년 뿌듯하게 수능을 치르고 나왔던 아이는, 혼자 채점을 매기고선 펑펑 울었다. 삶에서 중요한 관문 중 하나를 덜거덕 거리며 넘어가는 걸음이 수월치 않은 듯해 바라보는 나도, 남편도 속이 상했다.


고등학교 때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회사를 옮기고 적응하느라, 아이가 수시로 어느 대학을 썼는지, 어떤 과목을 선택했는지 모든 걸 남편이 함께했고, 고집이 셌던 아이는 본인의 의견만을 고수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소위 “사탐런”이 대세였던 시기에 과탐 2과목을 선택했던 아이는 좋지 않은 점수를 얻었다. 국영수 점수가 나쁘지 않았었지만, 선택과목 점수가 워낙 엉망이라서 본인이 원하는 대학은 원서 접수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런 아이가 재수를 입에 올렸다.


“재수는 없어.”


정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재수하는 비용도 문제였지만, 이제 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동생과,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는 남편까지 세 명이 공부하는 건 버거웠다.


또한, 아이는 다정한 성품이었지만, 발이 살짝 공중에 떠 있다고나 할까, 현실 파악이 다소 늦고, 이상만을 쫓았다. 예를 들면, 물리를 제일 못하는데, 선택과목 중 하나가 물리였고 물리학과를 지원했었다. 그런 아이가 재수를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래에서의 성숙한 아이는 목표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공중에 발을 딛고 선 아이는 믿을 수가 없었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아이에게 약한 남편은 결국 중재안을 내놓았다. 필요한 과목만 학원과 스터디카페를 다니면서 재수 비용을 최소한으로 만들되, 추후 대학 등록금을 1학년까지만 해주겠다고 아이와 협의했다.


고민했다. 아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반대했을 때, 부모를 원망하지나 않을까?


정시에 붙은 학과도 나쁘지 않았다. 학교는 점수가 높지 않은 대신, 졸업 후 자격증이 나왔으니까. 나는 아이가 현실을 알기를 바랐다.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현재 본인이 어디에 서 있는 건지 정확히 알기를 원했다. 그래야, 꿈꾸던 자신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깨닫고 목표를 사실적으로 인식하기를 바랐다.


물론, 결국 나는 졌다.


내가 진 대가로, 아이는 재수를 선택했고, 내일은 수능일이다.


올해가 그 애에게 가혹한 한 해였겠지만, 그만큼 간절히 바라던 기회였음을 잊지 않았기를 바란다.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조금 흔들렸을지라도 쓰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시험 결과가 좋기를 바라지만,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넘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처럼 행복과 불행은 꼭 보이는 것처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말이 진리라고 여긴다. 불행처럼 여겨지는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거나, 최고의 축복은 때로 최악의 일이 될 수 있으니, 나는 아이가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괜찮다.


다만, 힘든 시기를 걸어온 아이가 원하는 대로 성취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더라도, 성인으로 한 발짝 다가선 아이가 스스로 일어서서, 미성년자로 지냈던 문을 닫고, 인생의 여러 문 중 하나를 열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아이에게 나와 남편이 단단한 버팀목으로 버틸 수 있게 되기를,


우리에게 인내가 충분하기를, 두려워도 담대히 나아가기를, 또한 지금 마음 졸이는 수험생과 함께하는 부모님들에게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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