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자마자, 큰 아이는 알바 지원을 했다. 면접까지 다녀와서는 합격했다며 기세등등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다. 아르바이트 합격한 일이 저렇게 의기양양할 일인가 싶었지만, 수능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던 본인의 속은 오죽할까 싶어서, 웃고 말았다.
아이는 재수가 망한 마당에 3수라는 얼토당토한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공부를 해봐야 저도 지치고, 기대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수능을 치른 날, 새벽 늦게까지 불이 켜진 커튼 사이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싶었다. 속이 제일 상한 건 본인이겠지만, 아이는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말이 너무 많나 싶을 만큼 모든 걸 재잘대던 쪼꼬미가, 이제는 속내도 감출만한 나이가 되는 걸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했다.
쪼꼬미가 다니기로 한 가게는 아파트 주변 빵집이었다. 음료와 커피를 같이 하는 곳이었는데, 주말 오후부터 마감까지 다닌다며 수시 시험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첫날 10시 넘어서 들어온 아이가,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일한다고 하길래,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기를 바랐고, 공부도 힘든 일이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한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를 바랐다.
둘째 날, 아이는 눈이 움푹 들어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중간중간 상황을 체크하던 남편은 3시부터 일하는 아이가 저녁을 시식 빵으로 때웠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눈이 떼꼰한 아이에게 근로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한 후, 꼼꼼하게 읽어 내렸다. 계약서에는 2시간에 15분씩 휴식 시간을 선택하는 것과 선택하지 않는 것, 선택 할 경우 근로 시간에서 제외한다고 쓰여 있었다.
알바생의 근로계약서라니, 그런 걸 작성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나름 꼼꼼하게 작성되어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근로시장이 선진화되어 있다는 뉴스를 귓등으로 들었던 거 같은데, 계약서 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복잡한 일들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아서. 계약서를 읽는 내내 입안이 씁쓸했다.
하루에 7시간을 근무하는데, 식사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근무 여건이 험난해 보였고, 7시간 동안 앉지 못하고 테이블에 기댔다는 아이의 말도 신경이 쓰였다. 결국 나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불합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업주였다면 한창 초짜 직원의 밥을 챙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으니까.
인터넷 검색을 하고 아는 지인 찬스로 계약서를 검토했다. 몇몇 조항은 해당되지 않은 것 같았고, 고약한 업주처럼 계약서를 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약서에 보이지 않게 내포된 오랜 기간 갈등의 증거가 문장으로 만들어져, 신경을 갉작갉작 긁어댔다. 업주들은 업주대로, 사람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테고, 여러 실망 속에 겹겹이 계약서의 문구가 늘어났을 터였다. 알바를 구하는 사회 초년생들은 초록빛의 마음을 품고 시작했다가, 멍든 잎사귀들을 품은 채 독해졌을 터였다.
7시간 내내 선 채로 일할 쪼꼬미는 적어도 한 달 동안은 해 볼 거라며 오늘도 당당하게 출근했다. 7시간 내내 테이블에 서서 빵을 포장하고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닦고, 시식 빵으로 저녁을 해결할 사회 초년생의 첫걸음이 비틀대지 않기를 바라는 건, 내가 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업을 해 본 적이 없어 좀 더 깊은 통찰력이 없는 나는 아직도 바라본다. 성실히 일하는 청년들과, 사업을 일으키는 사장님들이 서로 상생해 나가는 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