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에서 할로윈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인 그 시각, 딸아이의 친구가 달려와서 지우가 운다고 알려준다.
'또 다쳤나?'
아까도 무슨 게임을 하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졌다고 했었는데 또 다친 건 아닌가 걱정부터 올라온다. 아이가 다쳤다고 하면 위로하고 돌보는 마음 대신 걱정이 앞서, 그 마음이 겉으로는 짜증이 되어 튀어나올 때가 있다. 특히 엄마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그러하다. 하지만 오늘은 급할 이유가 없다. 물론 아이가 다쳤을까 봐 마음엔 걱정이 가득하지만 겉으로는 편안한 표정을 유지하고 아이에게 가서 왜 울었는지 물어보았다. 귀신의 집에 들어갔는데 무서워서 울었단다.
"무서웠어? 놀랐겠네."
할로윈 파티 중 고등학생들이 야심 차게 준비하는 큰 활동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귀신의 집이다. 아이들 활동이라 엄마들이 가더라도 밖에서만 지켜봤기에 얼마나 무서운지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 안에 들어갔다가 무서워서 울었다니 사실 속으로는 안심이 되고 한편으로는 그게 그렇게 무서운가 궁금하기도 하다. 워낙 공포물이나 스릴러를 즐겨하는 편이라 웬만하게 무섭지 않으면 시시할 것 같은데, 고등학생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얼마나 무섭게 연출했을지 그건 좀 궁금하다.
어디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아이의 무서움을 다소 가볍게 받아넘기고, 어설픈 위로를 한 후였는데, 귀신의 집에서 어른들을 초대한다고 연락이 왔다. 어른을 놀라게 할 정도의 자신감이라면 한번 경험해보고 싶고, 아이가 무서워서 놀랄 정도의 공포감이 나에게도 느껴지는지 알고 싶어 자진해서 들어갔다.
모두 손을 꼭 잡고 들어가되, 본인이 무섭다고 귀신 역할을 하는 학생들을 후려치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귀신을 건들지는 말라는 주의 사항을 듣고 그 말이 주는 뉘앙스가 느껴져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서도 낯선 공포가 줄 약간의 긴장과 얼마나 무서울까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커져가는 중인데, 드디어 귀신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여기저기 괴성이 들려오고 가벽이 흔들린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공포 속으로 내던져진 엄마들은 한발 한발 내딛으며 안으로 안으로 향했다.
암막커튼으로 어둠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낮이라 밖에서 스며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라 안이 아주 어둡지는 않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허수아비 같은 귀신이 왔다 갔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밑에서 학생들이 과감하게 내 다리도 붙잡았지만 애교로 봐줄 만하다. 정말 무서운 건 아무 말 없이 하얀 소복 입고, 아무 소리도 없이 우리곁을 지나갈 때였다. 그 소리 없음이 주는 공포가 더 컸다. 그리고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검은 옷을 입고 막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올 때는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가짜인 걸 알기에 막 웃음이 나와 신나게 웃으면서도, 어린아이들에겐 다소 무서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생들이 동생뻘 되는 어린 친구들이 들어왔을 때 물론 수위 조절은 했겠지만 일단 아이들이라 무서울 것이고, 특히 지우 같은 경우 어두움을 무서워하니 들어가자마자 무서웠을 것 같다.
'귀신 나오는 집에 들어가 보기' 생각보다 재미있고, 생각보다 스릴 있었다. 무서움을 연출하기 위해 점심도 안 먹고 애쓴 학생들의 노고가 기특해서 크게 크게 소리 질러주고 신나게 웃다가 나왔다. 엄청 무서운 사람처럼. 그리고 사실 쪼끔 무섭긴 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때로는 엄마도 아이의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 할로윈 파티에서 엄마인 내가 직접 해보았고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아이가 무서워했던 그 자리에 엄마인 나를 데려다 놓고 아이가 어땠을지 이해할 수 있다면 한 번쯤 그렇게 해보라고 권해 본다. 그럴 때 아이 마음에 한결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