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유한함에 대하여
작고한 사카모토 류이치를 기리며, 작은 모임을 가졌다. 그의 첫번째 발병 시기와 맞물리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를 보고, 2020년 암이 재발한 후 임종 직전까지 활동들과 생각들을 볼 수 있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읽었다.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사랑>에서 인용한 위 책의 제목에서는 이미 ‘유한성’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고령화 시대의 운명인 긴 권태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오직, 이 유한함에 대한 자각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주를 생각하는 순간, 주변 지인들과 이 사회를 대하는 감정과 느낌이 달라진다. 최저 출산율이나 지방 인구 소멸이라는, '소멸'과 관련된 기사를 유례없이 자주 접하다보면 가족제도나, 이주 등, 전에 관심없던 주제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는 그가 깨고 싶은 산이었던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서, 넘고 싶은 산인 <async>로 가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코랄을 완성해가는 고독한 작업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이 음악가에 대한 피상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그의 말년 작업들을 좀더 이해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최대 소득이었다.
아직까지도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고 기억되고 있는 것은, 혈기왕성 했던 80년대에 내놓은 <로렌스>이다. 이후 그가 애정을 여과없이 보이는 앨범 <async>나, 이번 영화 <괴물>에 삽입된 <12> 같은, 실험적이면서도 그의 철학이 녹아있고, 또한 병마와 싸우며 전투하듯 작업한 앨범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다.
이 두 산을 경유할 때, 타르코프스키와 바흐가 있다. 내게 바흐가 주는 이미지는 고독과 신성(구원)이다. 책에서는, 사카모토상이 장르를 넘어서 다양한 음악가들과 말년까지 왕성하게 교류하고 작업한 것을 알 수 있지만, 다큐에서만은 집의 지하 작업실에 혼자 내려가서 홀로 음악작업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예기치 못하게 암이 발병하면서 아들이 집에서 촬영한 장면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머쓱한듯 배시시 웃으며 인터뷰하는 모습이 유독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중간중간 그가 약간은 서툴게 푸가의 기법이나 골든베르크를 치는 모습이 나온다. 바흐의 음악에는 암울한 시대에서 오는 우울이 깃들어있다고 한 것처럼, 911 테러, 자연재해, 원전사고, 코로나 같은 역병이 혼재한 세상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특유의 멜랑콜리함, 고독의 정서를 표방한다. 그는 가장 순수한 자연의 소리를 채취하여, 그 새하얀 공백을 코랄(합창)으로 만들어간다. 바흐의 코랄은 타르코프스키가 써버렸으니 ‘나만의 코랄’을 만들 수 밖에 없단 선언은 의미심장한데, 두 음악가의 생애는 어느순간 부드럽게 오버랩된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바흐와 드뷔시가 실명하기까지나 죽기 직전까지 작곡을 하다 세상을 떠난 것을 인용하는데, 몇 년 뒤 그도 마치 그들처럼 살다 떠난다. 편집인이 대신하여 쓴 에필로그에서 죽기 직전의 그의 개인 노트를 읽는 것은 고통스럽고 슬펐다. 이것은, 시한부를 받는다면 죽기 직전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지, 고로 일이 지금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새롭게 생각하게 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 얼굴에 도는 생기와 해방을 발견하는 것이 내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