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의 훈장

[구기향의 게임 문화이야기]

by 구기향 Karen Koo

이상혁, ‘페이커’가 체육훈장을 받았다. e스포츠 선수로서는 최초다.


이 소식은 한 선수의 커리어를 기리는 뉴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무엇을 ‘공적’으로 인정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단순한 기록이나 미담으로 소비하기에는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체육훈장은 대한민국이 스포츠 발전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국가훈장이다. 그중에서도 청룡장은 체육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에 해당한다. 이 훈장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나 세계선수권 우승자, 혹은 장기간 국제 무대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낸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주어져 왔다. 김연아, 손흥민, 박세리, 장미란 같은 이름들이 이 훈장의 전례로 언급된다. 청룡장은 개인을 향한 칭찬을 넘어, 그 성취가 국가적 품격에 기여했음을 공인하는 국가의 인장이다.


T1 페이커 이상혁의 훈장 수여 현장 (사진 출처-청와대)


이상혁이 이 훈장을 받은 것은 e스포츠 선수 개인에 대한 예외적 배려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게임을 국위선양의 결과로 평가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그동안 게임은 소수의 문화였고, 젊은이의 문화였으며, 미래 산업이라는 말로 끊임없이 설명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훈장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훈장은 이해와 인정이 이미 끝났을 때 주어지는 결과다. 페이커의 수훈은 게임이 더 이상 특정 세대의 언어가 아니라, 중장년층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구구절절한 해설 없이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더 이례적인 점은, 이상혁이 이 훈장을 받은 시점이 은퇴 이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여전히 현역 선수로서 무대에 서 있고,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체육훈장이 보통 한 시대의 결산처럼 주어져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국가가 한 선수의 ‘완결된 과거’가 아니라 ‘지속되고 있는 현재’를 평가한 드문 사례다. 페이커는 단순히 우승을 많이 한 선수가 아니다. 그는 10년 이상 최정상에서 경쟁했고, 한 종목의 신뢰도를 한 개인이 떠받친 희귀한 사례다. 그의 커리어는 “게임도 세계 최고가 되면 국가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화려한 훈장이 곧장 산업의 성숙으로 치환되지는 않는다. 선수 보호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고, 짧은 커리어 이후의 삶은 개인의 책임으로 남아 있다. 제도와 지원은 스타 선수의 헌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페이커급’이 아니면 존중받기 어려운 구조 또한 여전하다. 이 훈장은 도착이 아니라 질문이다. 이 인정을 산업과 제도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는 이제 게임계가 답해야 할 과제다.


마지막으로, 이상혁에게 개인적인 축하를 전하고 싶다.


2013년, LA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에서 롤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팀 이름을 외치던 열일곱 살의 앳된 얼굴은 이제 한국 e스포츠와 게임을 대변하는 공훈자의 얼굴이 되었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선수로 남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경쟁하며 그 상징을 현재형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훈장은 과거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그가 걸어온 시간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태도에 대한 인정일 것이다. 이상혁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이 긴 시간에, 그리고 그 시간을 끝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까지 끌어올린 데에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낸다.


장하다 이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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