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향의 게임 문화이야기]
2025년 연말, 국내 게임 업계의 성적표를 앱마켓 매출 순위에서 찾으려 했다면 고개를 갸웃하게 될 것이다. 기존에 부동의 1위를 지키던 대형 MMORPG들의 순위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해외 자본의 게임들이 채우고 있는 걸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맞다. 그 변화한 순위가 현재 앱마켓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 그대로다. 얼핏 보면 K-게임의 위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몰락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독립 선언’의 결과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엔씨소프트다. 8년간 구글 플레이 매출 1위를 수성하던 '리니지M'은 2025년 하반기 자체 결제 시스템 도입 직후 순위가 10위권 밖으로 수직 하락했다. 표면적인 지표만 보면 '엔씨의 몰락'이라 평할 법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엔씨는 모바일 인앱 결제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PC와 웹 결제 비중을 90% 가까이 끌어올렸다. 구글에 지불하던 30%의 통행세를 거부하고, 그 비용을 고스란히 기업의 실익과 유저 혜택으로 전환한 것이다.
실제로 2025년 3분기 엔씨소프트의 실적 발표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으로 인한 일회성 비용 때문에 영업이익은 일시적 적자를 기록했지만, 부동산 매각과 수수료 절감 등을 통해 당기순이익은 3,000억 원대를 상회하는 반전을 보여주었다. 이는 단기 실적의 등락과 무관하게, 게임사가 앱마켓의 ‘순위 권력’에서 벗어나 실속 중심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일회성 요인이 포함된 수치이지만, 방향성만큼은 분명하다.
변화의 핵심인 ‘자체 결제(Web/PC 결제)’ 유도는 유저들에게도 득이 되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결제하면 아이템을 더 줍니다"라는 메시지는 유저들의 결제 패턴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앱마켓 지표상 매출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수수료를 덜어낸 게임사의 실제 수익은 오히려 개선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표상의 순위는 낮아졌을지언정 내실은 더 탄탄해진 셈이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돈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 산업이 플랫폼 홀더(Platform Holder)의 강력한 통제권에서 벗어나 ‘데이터 주권’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플랫폼사가 독점했던 유저의 구매 패턴 데이터를 게임사가 직접 관리하게 되면서, 유저 개개인에 맞춘 정교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졌다. 플랫폼에 종속되어 있던 유통 구조가 제작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이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앱마켓의 매출 순위가 여전히 대중적인 인지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표 분산’은 시장의 평가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또한, 자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여력이 없는 중소 개발사들에게는 여전히 30%의 수수료가 거대한 장벽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은 게임 유통의 패러다임이 바뀐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게임의 성공은 ‘구글 순위 몇 위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충성도 높은 유저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거대 플랫폼이 지배하던 10년의 독점 시대가 저물고, 제작자가 주도권을 갖는 새로운 유통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플랫폼의 순위에서 사라진 게임들이, 산업의 주도권에서는 오히려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