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PR] - 프로들을 위한 미디어 트레이닝
"치킨을 만 마리 사 먹으려 했는데 그러면 너무 배부를 거 같아서 백 마리만 사 먹어야겠어요. 나머지는 저축하겠습니다”
지난 2013년 10월, 미국 LA의 스테이플스센터의 백스테이지에 위치한 대형 미디어 홀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200여 명의 기자/ 미디어와 201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결승 우승팀 SKT T1간의 승리 인터뷰 시간이 마련됐다. 당시 SKT T1팀의 우승을 만들어 낸 다섯 선수는 '벵기' 배성웅과 '피글렛' 채광진, '임팩트' 정언영, '푸만두' 이정현과 '페이커' 이상혁. 그렇다. 이 날은 오늘날 LoL e스포츠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 손꼽히고 있는 '대상혁'... 이상혁 선수*의 롤드컵 우승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 현시점에서 페이커 이상혁이 누구냐? 라 물을 이는 많이 없을 수 있다. 최근 대통령으로부터 청룡훈장을 받은 건을 비롯해, 라이엇 게임즈 측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그의 주요 경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LCK 10회 우승, LoL 월드 챔피언십 6회 우승(2013, 2015, 2016, 2023, 2024, 2025)
LoL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 2회 우승(2016, 2017)
2024년 라이엇 게임즈 ‘LoL e스포츠 전설의 전당’ 초대 헌액자
2026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훈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선수
한데 이 날 각 선수들의 우승소감을 비롯해, 경기 내용에 대한 전략적인 질문 등에 이어 "우승 상금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미디어의 질문이 나왔을 때 페이커 선수는 위와 같이 답했다.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결과를 낸 자리. 상징적인 상금에 대한 앞으로의 활용 계획을 물은 질문에 의외로 우리 선수들은 머뭇거리다 농담을 던지거나, 집의 부채를 먼저 갚고 나머지는 저축을 해야겠다는 등의 답변을 내놨다. 뒤이어 좀 더 살아있는 답을 주어도 좋을 질문들에 "네", "아니요", "좋아요" 등의 단답형 답을 하고 옆 선수에게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다. 현장에서 한-영, 영-한 통역을 맡았던 라이엇 게임즈의 직원은 선수들의 답변 내용이 다소 당황스러울 때마다 “이 내용 그대로 외신들 듣게 번역해도 되나요?"라며 내게 재차 확인했다.
잘못된 답변은 아니지만, 이 날 현장 선수들의 입을 통해... '앗 저것이 저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변이 맞을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답이 많았다. (때문에 실제 현장 통역 시 이건 무슨 의도에서 한 얘기이고 진심으로 Serious Problem이 있는 건 아니다 등… 추가 설명을 붙여가며 진행했다)
이 모든 미디어 인터뷰 세션이 끝난 뒤 현장서 취재를 하던 한국의 한 스포츠 미디어의 부장이 내게 다가와 "선수들 인터뷰 연습 좀 해야겠다" 조언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우리 선수들이 최고의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기존의 미디어 트레이닝을 강화해야겠다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사실 라이엇 게임즈와 한국 e스포츠협회는 이미 LoL 프로게이머들을 대상 하여, 소양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프로 스포츠선수들의 외부 발언이나 인터뷰 문답/ 인터뷰 스킬에 대한 사전 트레이닝 등은 각 스포츠 구단과 협회에서 모두 주도하지만, e스포츠는 일반 스포츠와 달리 게임사의 역할과 의지가 차지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기에 라이엇 게임즈 측에서는 이미 한국 e스포츠 초기부터 한국 e스포츠협회와 함께 소양 교육, 일명 프로플레이어 서밋을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해 왔던 것.
해당 교육은 프로게이머들을 대상 하여 프로다운 게임플레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리마인드 하는 것을 비롯해 현행 리그의 다가오는 일정 및 각종 향후 계획이나 비전 등에 대한 사전 공유 등의 중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그리고 이 소양교육의 일부로, 미디어 대응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 세션에는 보통 본인이 화자로 나서 우리 선수들에게 '미디어란 무엇인가', '미디어와 대면하고 인터뷰 등을 임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등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프리젠테이션 형태로 설명하고 예시를 통해 이해를 도모했다. 미디어 문답 내용이나, 비디오 인터뷰를 복기/ 분석하고 미디어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부분은 각 구단별로 자체 진행을 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LoL 프로게이머를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미디어 트레이닝이 한 번쯤 꼭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2014년, 구단별/ 팀별로 진행할 미디어 트레이닝 심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했다. 그리고는 라이엇 내 e스포츠 담당부서 및 각 구단 측의 협조를 얻어 비시즌 대대적이고 매우 상세한 공부! 의 시간을 가졌다.
미디어 트레이닝(Media Training)이란, 말 그대로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오류 없이 잘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한데 LoL 프로게이머들은 그야말로 프로이기에 평소 프로리그나 국제대회의 시즌 중에는 잠자는 시간과 식사를 하고 짧게 휴식을 하는 시간 외에는 매일 새벽까지 전략을 논하고 게임 연습을 하기에 바빴다. 또 코치진이나 선수들과도 대화를 나눠보니, 인터뷰 내용을 하나하나 복기하기 쑥스러워서... 또는 비디오 인터뷰 내용 보기가 싫어서 제대로 된 복기나 분석을 하지 않고 넘어간 경우도 많았다 했다.
이에 아래와 같은 골자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1부] 개념 설명/ 업계 전문가 초청 강연
*미디어란 무엇인가
*인터뷰란 무엇인가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왜 미디어를 잘 대면하고, 잘 이용해야 하는가
*업계 전문가(취재 기자/ 부장급) 초청 - 15분 강연
[2부] 미디어 대응 실전연습
*미디어가 자주 던지는 질문 제시
*그룹별 실질 문답 녹화 (미디어 역할 PR1인 + 프로게이머, 코칭진 3~4인 구성)
*PR/ 그룹별 녹화본 분석, Best & Wrost 선별
*Best & Worst 팀별 복기, 분석
*미디어를 알고 활용하기
이 미디어 트레이닝은 미디어, 기자에게서 어떤 질문을 들었을 때에는 무엇이라 답하라 답변을 정해주거나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리 하는 것이 목적도 아니었다. 나의, 또 우리의 목적은 LoL 프로게이머, 우리 선수들이 미디어를 좀 더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에 총 2부로 이뤄지는 3-4시간 가량의 미디어 트레이닝은 비시즌 중 각 구단/ 팀과 시간을 조율하고 그들의 숙소에 최대한 가까운 공간을 대여해 진행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치 못할 경우, PR조직이 직접 각 팀의 선수 숙소에 방문해 방문 수업도 병행했다(사족이지만, 한 프로팀의 숙소에 있어 대형견이 숙소를 방문한 본인을 매우 반가워해 그 또한 거실에 함께 앉아 수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미디어가 가진 고유의 속성이나 시절, 시대에 따라 달라져가는 미디어의 변화상 등을 설명하는 동시에 '기자 스스로가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즉 미디어의 존재 가치를 얘기했다. 독자와 팬들을 대변해 공식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이에 대해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내뱉는 답변이 그대로 활자가 되고 비디오 콘텐츠가 되어 기록되며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데 집중했다.
또 그러한 인터뷰 기회는, 승자(Winner)이기에 주어지는 귀한 기회라는 점(오늘날에는 패배팀 또한 미디어 문답/ 인터뷰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건 미디어의 관심은 우승팀, 우승 선수에 집중된다)과 미디어 및 대중의 그러한 관심은 언제든 한 순간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도 최대한 쉽게 설명했다.
때문에 인터뷰를 귀찮아하거나, 쑥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팬들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고, 상대팀에게 도전장을 내밀거나 공약을 걸어 대중의 주목을 극대화하기도 하는 등... 본인과 팀에 도움이 되게 잘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는 점도 구단마다 팀마다 설명했다.
동시에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또한 중요한 전달 요소가 된다는 면에서 선수들이 이동차량으로 이동할 때에도 팬들이 또 미디어가 보고 있고 그들을 촬영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비롯해 외모에 지나치게 치중할 필요는 없지만 본인의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 중 어느 쪽이 더 사진에 멋지게 나오는지 등... 또한 한 번쯤 거울을 보며 생각해 보라 이야기했다. 프로게이머는 프로스포츠선수인 동시에 마치 아이돌 스타처럼 팬들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휴식 시간을 덜어내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의외로 우리 선수들은 눈을 빛내며 집중해서 내용을 들었다. 간단히 메모를 하는 선수들도 있었고, 궁금한 점은 재차 손을 들어 물었다. 매일 프로리그와 국제대회 현장에서 마주치는 것이 미디어 카메라이고, 기자들의 얼굴이었지만 선수들 스스로도 이를 얼마나 가까이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교육이 매우 의미가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