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증명하는 플랫폼의 진화

[구기향의 게임 문화이야기]

by 구기향 Karen Koo

2026년 2월 4일, 에픽게임즈가 발표한 ‘2025년 결산 및 2026 로드맵’은 단순한 실적 공개를 넘어 플랫폼 경쟁 구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 발표된 수치 가운데 업계의 주목을 끈 것은 제3자(Third-party) 게임 매출이다. 2025년 에픽게임즈 스토어의 전체 매출은 11억 6,000만 달러(약 1조 5,000억 원)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는데, 특히 외부 개발사 게임 매출이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이는 ‘포트나이트’나 ‘언리얼 엔진’과 같은 자체 생태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타사 콘텐츠 소비가 플랫폼 내에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동안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무료 게임 저장소’라는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용자들이 무료 배포 이벤트를 통해 라이브러리를 채우지만 실제 구매는 스팀에서 이뤄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성장률은 에픽이 ‘무료 배포 기반 트래픽 전략’에서 ‘실제 결제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용자들이 독점 콘텐츠, 리워드 정책, 가격 혜택을 이유로 구매까지 이어지는 소비 패턴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개발사에게는 수익 구조가 유리한 유통 채널로, 이용자에게는 실질적인 소비 선택지로 자리 잡으며 플랫폼 인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단순한 친개발사 정책이 아니라 공급망 전략에 가깝다. 에픽은 스팀이 유지해 온 30% 수수료 구조에 맞서 12% 수수료를 유지해 왔으며,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일정 기간 또는 매출 구간에 대해 수수료 면제 혜택까지 제시했다. 이러한 구조는 유통 플랫폼이 단순 판매 채널을 넘어 콘텐츠 생산 생태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중소 개발사 입장에서는 생존성과 수익 안정성을 고려할 때 에픽을 전략적 선택지로 검토할 유인이 커졌고, 그 결과 시장은 스팀이 ‘규모의 네트워크 효과’를, 에픽이 ‘수익 구조의 매력’을 기반으로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에픽의 성장 배경에는 제작 도구와 유통 구조를 결합한 수직 통합 전략도 자리한다. 언리얼 엔진, UEFN(Unreal Editor for Fortnite), 통합 마켓플레이스 ‘Fab’, 그리고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하나의 제작·유통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다. 개발자는 에셋을 구매하고, 콘텐츠를 제작한 뒤 곧바로 유통 채널까지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제작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플랫폼 의존도를 강화하는 락인 효과를 만든다. 에픽의 성장이 업계에서 환영과 경계가 동시에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팀 중심 구조를 견제하는 경쟁자의 등장은 긍정적이지만, 제작 도구부터 유통까지 특정 생태계에 집중되는 구조는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에픽의 확장이 곧바로 플랫폼 경쟁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런처 사용자 경험, 라이브러리 관리, 커뮤니티 기능 측면에서는 스팀이 강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성장 지표가 중요한 이유는 이용자 행동이 ‘편의성 중심 선택’에서 ‘경제적 가치 중심 선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에픽의 57% 성장이라는 숫자는 플랫폼 경쟁의 기준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개발자에게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제공하고, 이용자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혜택을 돌려주는 플랫폼이 선택받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플랫폼 경쟁은 더 이상 인터페이스나 기능 경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플랫폼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콘텐츠 생산과 소비를 설계하는 경제 인프라로 평가받는다. 에픽의 성장은 플랫폼 충성도가 경험이 아니라 경제 구조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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