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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eeker Aug 11. 2016

아이 둘 데리고 유럽으로-1

London 7.23-7.28, 2007

London 7.23-7.28, 2007


13시간을 날아서 드디어 런던에 도착했다. 시내로 가기 위해 올라탄 지하철은 너무나 작았다. 왜 tube라 부르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를 무릎 앞에 놓고 공간이 주는 어색함에 두리번두리번.  

"으~"

하는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핼쑥한 얼굴의 백인 남자가 원망 섞인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 가방들 중 하나가 지하철이 갸우뚱할 때 맞은편에 앉은 그 남자의 깁스한 발을 덮친 것이다! 눈치 없이 기울어진 가방을 바로 세우면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조그만 목소리로

"so sorry...".


지하철역을 나오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다행히 두 블록 거리에 있는 호텔을 금방 찾아갈 수 있었지만 묵직한 슈트케이스에 달린 여덟 개의 바퀴들은 바둑판 모양으로 울퉁불퉁 포장된 회색 보도 위에서 낯선 남의 나라에 와 있다는 불안과 처량함을 사방에 광고라도 하는 것처럼 구르렁거리며 내 신경 줄을 팽팽하게 당긴다. 동시에 오랜 비행의 피곤과 허기때문에 비 오는 7월 저녁의 습기가 한겨울 냉기처럼 살 속을 파고들었다. 애들에게 이런 복잡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써 씩씩하게 빠른 걸음으로 보슬비를 헤치며 꿈속인 듯 걸어갔다.


런던 3일째 날 대영박물관을 오전에 관람하고 나서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도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도를 보며 나와 아이들이 얘기하는 것을 보고 긴 생머리에 키가 큰 동양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학생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뒤 차이나타운 가는 길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우리를 보니 한국에 계신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멀어져 갔다.


차이나타운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국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영국에 온 지 9년 됐다는 사장님은  우리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자신이 느낀 영국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저기 길 건너 공사 중인 건물 보이죠? 내가 여기 오픈할 때부터 저러고 있었는데 몇 년째 똑같아요.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죠."


매운 떡볶이로 다리 힘을 재충전하고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갑자기 후두두둑 창문을 세게 때리고 맥없이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시야를 가렸다. 곧 내려야 하는데... 퍼붓듯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어찌 애들이 걸어가나 걱정하다 내릴 정거장을 놓쳐버렸다. 다음 정거장에 내려 몇 걸음 내딛자 우산을 썼는데도 금세 무릎까지 젖어버린다. 이상하게도 한밤중처럼 거리엔 아무도 없다. 우리만 시내 한복판을 저벅저벅 걷고 있다. Westminster Abbey와 다른 건물들 입구에 서서 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일 뿐.

'저 사람들은 하염없이 저러고 서 있을 건가?'

비 오는 날이 더 많다는 영국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우산도 없이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게 이상했다. 꿋꿋하게 Big Ben앞에 도착했을 때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마법처럼 파란 하늘로 바뀌었다. 동시에 건물들 입구마다 사람들이 폭포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20분 만에 폭우는 멈췄고 홀딱 젖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그 많은 사람들의 옷자락은 얄밉게 나풀거렸다.


런던을 떠나는 날 또 다른 좌충우돌이 우리를 기다렸다. 아침에 서둘러 호텔을 나와 Waterloo역 짐 보관소에 가방들을 맡기고 가벼운 걸음으로 London Eye를 타러 갔다. 런던의 풍광을 마음에 담고 떠나리라! 역 건물 좌측 뒷길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거대한 하얀 링 앞에 다다른다. 테러 대비용 가방수색을 위한 한 시간의 긴 줄 서기를 감수한 이유는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해 만든 런던의 상징물 이여서가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설치된 놀이기구를 아들이 꼭 타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움직이는 캡슐 내에 10명만 탈 수 있어 황금빛 국회의사당과 템즈강을 비롯해 360도 런던 시내의 전망을 여유롭게 내려다볼 수 있었다.


파리로 출발하는 기차 시간에 여유 있게 워털루역으로 돌아갔는데 이럴 수가!

'bording closed'.

기차 출발까지 20분이 남았는데도 우린 탑승이 안된다니! 한 손에 무전기를 든 여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어찌하면 좋으냐고 물었더니 다음 기차 편 티켓을 추가 요금 없이 받을 수 있다며 매표소로 안내해준다. 매표소의 유리벽 너머에 흑인 여직원이 기차를 왜 놓쳤냐며 매의 눈으로 쏘아보길래

"Sorry but I came late."

최대한 공손히 대답하자 다음엔 추가 요금을 물어야 한다며 근엄한 표정으로 새 티켓을 건네준다. 살면서 이보다 가슴이 쪼그라들었던 순간이 떠오르질 않았다. 나와 아이들은 유로스타의 일등석에 앉자마자 비행기도 아닌데 탑승수속이 왜 이리 까다롭냐고 투덜 됐다. 헌데 서비스는 비행기 수준이다. 기내식 같은 식사와 스낵에 생수까지 주니 말이다.



런던은 첫 여행지로 실수도 많았고 처음 3일 동안 아이들은 애처로운 다크서클을 눈밑에 매달고 다닐 만큼 힘들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National Gallery의 명화들과 뮤지컬 Lion King은 다시 또 오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다. 특히 몸속을 뚫고 지나가는 듯 강렬하고 정열적인 드럼과 아프리카 초원의 광활함이 느껴지는 흑인 배우들의 카랑카랑한 노래는 마른풀처럼 물기 없는 영혼에 야성을 깨워주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그 후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움은 사람을 향한 것만이 아님을 경험했다. 나의 영혼과 일치된 내가 존재했던 한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갑작스러운 지진처럼 가끔 내 마음에 갈라진 틈을 만들 거란 걸 어두운 해저터널 속에선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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