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tral Emotion
언제부턴가 현대인들은 감정을 단순히 좋거나 싫은, 긍정적, 부정적이라는 이분법으로 편을 갈라왔다. 즐거움, 희망, 자부심, 만족감, 성취감, 감사, 사랑, 존경심과 같은 좋은 감정을 되도록 많이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다. 반대로 불안, 슬픔, 지루함, 실망, 부끄러움, 분노, 질투, 미움과 같은 감정들은 최대한 마주하길 꺼리고 억누르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감정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가 느끼는 정서와 그에 대한 행동 유형들을 고착시켜온 건 아닐까 의문을 던져 본다.
Q1.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들 중에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중립적인 (neutral) 감정은 하나도 없는 걸까?
Q2. 부정적인 감정들은 반드시 피해야 하나?
외로움은 영혼이 보내는 경고음
A1.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기준점 0에
해당하는 중립적인 감정이다.
보통 혼자 있는 상황에서 쓸쓸함을 느낄 때 우리는 외롭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비슷한 가치관과 취미를 가진 친구나 나를 사랑하는 이성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외로움이 사라질 거라 기대한다. 연인과 친구가 곁에 없을 땐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타인과의 연결을 확인하려 한다.
'카톡 카톡'.
하지만 정작 자신과 마주하는 걸 회피하는 데서 오는 내 영혼과의 단절이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의 뿌리라는 건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내가 자신과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과 진정한 교감이라는 게 가능할까? 내가 나를 소외시키는데 타인의 애정이 온전히 내 마음 깊숙이 와 닿을 수 있을까?
혼자라는 느낌은 집단 따돌림과 같은 외부에서 가해진 고립에 의해 야기될 수도 있지만 내부적 요소에 의해 생산되기도 한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욕망의 눈이 발달한 사람은 자신을 응시하는 내면의 시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이 소유하고 인정받기 위해 내달리는 욕망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저만치 뒤처진 영혼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음이 바로 외로움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혼의 메시지에 제대로 응답하려면 외로움을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의식 수준의 자아(ego)와 영혼(soul)의 일치를 조율하는 중성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알코올기에 의존해서 외로움으로부터 도피하기보다는 산책, 명상, 글쓰기와 같은 능동적인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외로움과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자아 성찰(self-reflection)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지 능력으로 인간의 이마와 눈썹 사이에 위치한 뇌의 전전두엽(prefrontal lobe)이 담당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에 속한다. 나의 의식과 감정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비판하는 또 다른 나를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메타인지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가치
A2. 부정적인 감정도 우리 삶의 지속을 위한 순기능
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행복이 절정에 도달한 순간 불안을 느끼고 사랑이 지나쳐 증오로 변질되기도 하며 성취감에 취하여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된다는 세상 이치는 감정에도 적용된다. 부정적인 감정들 중에서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것은 불안이다. 뭔가 엄습해 오는 느낌은 있으나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불안의 강도는 더 커진다.
인간관계와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안을 감지했다면 애써 괜찮은 듯 외면하지 말자. 불안은 지금 나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불리한 미래가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동물들이 지진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처럼 사람은 5차원의 의식을 통해 미래의 자신이 보내는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우리가 기본 전제로 살아가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단선적 시간 개념 대신 입체적인 매트릭스의 시간 개념을 받아들인 주인공들이 자신의 미래를 현재라는 공간 속에서 생산적으로 컨트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감정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반응 양상들은 가정교육, 학교교육, 대중문화, 상업광고에 의해 학습된 집단 가치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다. 불안과 마찬가지로 슬픔과 화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감정 정화와 자기 방어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강요받고 있다. 남자는 남들 앞에서 울지 말아야 하고 화를 내면 성질 더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히니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식이다.
도로에서 시비가 붙어 다른 운전자의 차를 파손하고 길가는 행인을 분명한 동기 없이 살해하는 이상 행동들은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한 조절력의 상실에서 초래되었다. 그러나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모든 사람이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부정적 감정이 마음에서 올라온다면 일단 그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나는 화가 났다/슬프다.'
짜증, 비명, 물건을 던지는 행동으로 반응을 드러내기 전에 단 30초 만이라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 원인 자극을 찾는데 정신을 집중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행동으로 치닫는 걸 막을 수 있다.
'나를 화나게/슬프게 만든 게 뭐지?'
또한 그러한 부정적 감정의 원인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한 행동 때문이라면 자신이 느낀 감정 상태를 담담하게 말로 전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상대가 내 감정 상태를 알아주길 기다리다간 내 안에 휘몰아치는 감정에 내가 먼저 매몰되어 처음에 느낀 감정이 다른 감정들과 뒤섞여 버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이 장면은 극적인 CG 효과로 동양 철학의 은유를 담고 있다. 주인공 네오는 인공지능 AI 가 지배하는 가상현실 속에서 소심한 회사원이자 헤커로 자신을 인식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을 가상의 매트릭스가 통제할 수 없다는 깨달음과 확신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죽음의 총알들이 허상일 뿐임을 알고 부정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가 규정한 감정에 대한 신화의 허상에 대해 우리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