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동의 공부전략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무언가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
한 과제에 대한 집중력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나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 끈기
주어진 정보를 분류, 비교, 대조,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논리적 사고력
그렇다면 호기심, 집중력, 끈기,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수학, 영어, 한자를 공부시켜야 할까요?
아이들이 첫걸음마를 위해서 뒤집기-기어 다니기-집고 서기-걷기의 단계를 거치듯이 뇌도 일정한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11세 무렵 추상적 논리력이 형성되기 전 단계의 유아와 아동들에게 이러한 인위적인 학습은 뇌에 스트레스를 가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기능을 오히려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호기심-질문-논리적 사고력의 관계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유아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나 물건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이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대상(shema)과 무엇이 다른지 파악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문이 트인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왜~애?"이죠. 천둥은 왜 치는지, 밤에 해님은 왜 볼 수 없는지, 아빠는 왜 코를 고는지... 끊임없이 물어대는 질문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인과관계를 궁금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부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유아가 이해하기 쉬운 버전으로 재구성하려니 머리가 아파서 그만 물으라고 하기 십상이지만 이럴 때 교과서적인 지식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아이의 생각을 먼저 반문해 보세요.
"지원이는 해가 밤에 어디로 간 것 같아?"
원인과 결과에 대한 추론 능력은 중. 고등학교의 수학, 과학, 역사, 철학 교과에서 핵심이 되는 사고력입니다. 부모의 재치 있는 질문 하나가 이러한 사고력의 씨앗이 됩니다. 아이가 물음에 대해 답을 찾으려면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호기심에서 출발한 질문은 논리력-상상력-창조력이란 고등 사고력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죠. 따라서 부모의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예, 아니오."를 유도하는 질문보다 "왜, 어떻게"로 시작하는 질문이 말수가 적은 아이들을 대화에 참여하게 만듭니다.
좋아하는 놀이로 집중력과 인내심 키우기
만 7세에 초등학교 공부를 시작하는 이유는 글자와 숫자 같은 추상 기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뇌의 발달 시기가 이 연령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4-5세의 유아들도 문자와 기호의 명칭을 알고 식별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림을 식별할 때처럼 이미지와 해당 단어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기억하는 것이지 그 기호가 지닌 추상적인 양의 개념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50이란 수를 '오십'이라 말할 수 있어도 오십 개의 사탕을 머릿속에 떠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더하기, 빼기와 같은 연산능력은 그 기호가 내포한 양적인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유아들에게 수학 연산을 가르치는 것은 공부가 '짜증 나고 힘든 일'이라는 인상만 심어줄 수 있습니다.
유아와 저학년 아동은 블록 쌓기, 장난감 조립, 종이 접기와 같은 놀이를 통해 수학에 필요한 사고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무엇을 만들지 먼저 목표를 세우고(습득해야 할 수학 개념), 세부 과정을 계획하고(적용 공식과 연산과정), 만드는 도중에 블록이 쓰러진다거나 접는 순서를 건너뛰는 오류(연산 실수)를 경험하게 되므로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에 필요한 학습 능력과 정서를 훈련하게 됩니다. 또한 최종 결과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 자신이 하고 있는 놀이에 집중해야 하고 중간에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는 게 없으니 다시 또 시도하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아이들이 선행학습 때문에 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대치동의 초등 2학년생은 종이접기를 좋아하지만 학원에서 내준 수학과 영어 숙제 때문에 부모님이 종이접기를 금지시켰다고 했어요. 종이 접기의 장점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동안 그 학생의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고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아들과 딸이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한글과 숫자 공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놀았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블록 쌓기, 그림 그리기, 장난감이 등장하는 이야기 만들기, 종이 접기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놀이중심의 레지오 교수법을 채택한 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한글과 숫자 교육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두 달 전에 기본 글자와 숫자 1-100만 가르쳤고, 초등학교 6년 동안 수학은 한 학기 분량의 기본 개념만 방학 때 예습시켰습니다. 저학년까지 사교육과 과도한 선행을 하지 않아도 4-6학년 수학경시 대회에서 고득점을 받았고 서울 국제고등학교 영재교육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공부도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 투자로 최고의 결과를 성취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있습니다. 유아와 저학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제대로 놀지 못한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공부는 뒷전이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논리력 키우기
제가 호주에서 인지발달심리학을 공부할 때 교수님이 던진 첫 질문은 "공부(learning)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책에 있는 지식을 암기하고 문제집으로 암기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공부는 처음 접한 학습 내용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의 연관성을 따져보고 실제 현실에서 그 예를 찾아내고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하나의 개념에 대해 정의 내리기-비교/관계 맺기-예시 들기-응용을 할 수 있어야 완전하게 '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학습능력은 수능시험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도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사고력 수학학원이나 논술학원에 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이 새로운 단어를 배울 때 그 뜻을 정확히 설명해주고 동의어와 반대말을 생각해보게 유도하고 문장을 간단히 지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또한 집에서 자신의 책상 위의 물건들과 입고 벗은 옷, 책들을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들이면 분류하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역사, 생물, 영어 문법처럼 암기해야 할 정보가 많은 과목은 큰 범주안에 세부 정보를 나누어 기억해야 배운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학습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의 집을 방문해보면 책상 위엔 책과 노트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바지와 양말이 뱀 허물처럼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정리가 제대로 안되면 학교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다거나 책과 참고서를 반복적으로 잃어버리게 됩니다. 기본이 바로 잡혀야 공부도 잘 하겠죠.
공부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출발선에서부터 전력질주를 하도록 강요받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한 분야에 대한 영재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유아의 시기는 다양한 활동과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는 시기입니다. 선행학습으로 인해 이러한 기회를 차단당한 청소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하고 싶어 하는지 몰라서 대학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좌절합니다. 목표가 없는데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대신 내 아이가 가진 재능과 장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공부 잘하는 아이의 기초를 다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