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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태 Sep 16. 2019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선조실록

박시백 / 휴머니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선조실록 / 휴머니스트



최근 일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잘못을 사죄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시민들이 분노와 짜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그저 일본 내부의 정치적인 아젠다로만 활용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일부 기업의 횡포나 다름없는 폭압적인 언행 작금의 상황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2011년 이후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진 적이 없다.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면모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다로 핵 폐수를 흘려보내거나, 후쿠시마 산 농수산물을 적극 홍보한다거나 하는 행동을 보며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정확히는 일본 정부)이 싫어졌다.

몇 개월 전 일본 여행에 대해 TV 예능이나 서적으로 많이 나오던 것들이 사실은 일본 관광청 등의 후원을 받은 콘텐츠라는 것을 듣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하고 책임지지는 않을까?


일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이제 그만두고서, 이 책에 대해 글을 이어나가는 것이 좋겠다.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 JTBC


일본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

최근 일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확대되면서 이순신 장군께서 예전에 하셨다던 발언이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관심을 갖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선조'다.


'선조'

후대의 역사적 평가에서 굉장히 부정적인 조선의 임금으로 알려진 선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책이 바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선조실록'이다.


이 책은 만화로 구성되어 일반적인 책 보다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물론, 다른 만화책보다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고 사실을 근거로 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사랑받는 이유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원본을 인물과 사건 위주로 보다 쉽게 풀이하여 전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왕조에 대한 이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책의 제목이 선조실록이라고 해서 선조가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외려 이이, 이황, 이순신 등의 역사적인 인물과 임진왜란이라는 굵직한 역사에 대해 중점적으로 서술한다. 그들 사이에 의미 있는 조연 정도 될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워낙 위대한 인물이었고 역사적으로 큰 사건인지라...


그런데, 조금은 편하게 들여다보고자 했던 알량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책을 다 본 지금은 씁쓸함이 조금 남아있다.

선조에 대해 새롭게 안 사실은 무능한 임금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사실 꽤나 능력이 출중했던 임금이었다는 것이다.


첫째, 40년이 넘는 꽤나 긴 재위 기간 중에 '이이, 이황, 류성룡, 이순신, 권율' 등 많은 인재를 곁에 두고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순신의 등용과 진급은 선조가 보여준 인재 등용의 혁신적인 예이며 선조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류성룡의 추천이 있었다고는 하나 지방 관리에서 중앙 고위직으로 발령하는 속도와 파격 행보가 단순히 신하의 추천으로만 가능하지는 않았을 터, 선조의 인재 등용에 대한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하다. 물론 혹자는 저렇게 좋은 인재들을 두고서 제대로 나라를 운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또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선조의 안목이나 추진력 등을 저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즉위 후 보여준 붕당정치에서의 조율하는 능력을 보면 선조가 아예 능력이 없는 임금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이제이로 왕권을 강화하는 역량은 매우 뛰어났다.


둘째, 임진왜란에서의 빠른 파천은 사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이었다. 파천 과정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을 배제하고서 파천에 대한 결정과 움직임을 보자면 임진왜란 승리의 결정적 전략이었다. 일본의 당시 전쟁 스타일은 성주의 목만 거두면 승리를 하는, 봉건제적인 양상을 띤다. 즉, 열심히 달려가 성의 성주를 잡아 항복을 받아내면, 그 성주의 모든 것(성, 재산, 백성 등)이 다 승자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선조의 목을 거두기 위해 밤낮을 개의치 않고 조선으로 달렸다. 하지만 선조는 빠른 파천을 결정했고, 히데요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후 백성들의 의병과 전선을 정비한 조선군의 저항을 이기지 못한 일본군은 결국 전쟁해서 패했다. 이를 두고도 혹자는 '임금이 어떻게 백성을 두고 도망갈 수 있냐'는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다. 그 또한 사실이지만 파천하지 못하고 사로잡혔을 때, 우리나라에 닥쳤을 고통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역사에서 가정이란 것은 무의미하다)


이렇듯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선조의 모습 속에는 뛰어난 임금으로서의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선조는 대체 어떤 이유로 조선의 좀팽이로 기억될까?

임진왜란 중 파천을 하는 과정에서, 전후 복구를 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공을 치하하는 과정에서 그토록 못난 모습을 보여주며 백성의 원망과 명나라의 눈치와 대신들에 휘둘리는 임금으로 남았을까? 그리고 대체 이순신을 그토록 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추측컨데, 그의 출신 배경과 주변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선조에 대한 인물을 좀 더 살펴보면 재미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적통으로만 이어지던 조선에서 방계 출신으로 임금에 오른 첫 번째 임금이라는 것이다.

문헌을 살펴보면 더 흥미롭다.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은 중종의 많고 많은 아들 중의 하나였으며, 후궁 창빈 안 씨의 아들로 왕계 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게다가 선조는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적통을 중요시하던 조선에서는 절대 왕이 될 수 없었던 왕가의 먼 친척이었다. 그런 선조가 어찌어찌 왕이 된 이후에 인순왕후의 수렴청정을 1년 만에 끝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즉위 후에 총명한 명군의 면모를 보이며 거침없이 나라를 운영하는 선조에 방계 출신이라는 그림자가 끊임없이 드리워졌을 것이 분명하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정통성이 가지는 의미, 대신들의 붕당정치 그리고 유림 세력 등 주변 둘러쌓은 환경을 생각해 볼 때 선조가 본연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에 조금은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특히, 갑작스러운 즉위로 인해 왕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선조는 외부 환경의 도전에 끊임없이 증명해 보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그에게 자신보다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백성들이 찬양하는 영웅의 등장은 불행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시기심은 자신을 증명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한 개인의 발악이었을 수도 있다.

왕이 될 그릇이 못 되는 사람을 왕의 자리에 앉혀놓는다면, 그 개인으로서의 삶은 지극히 불행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신의 역량이 작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정말 지옥 같은 이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삶을 살았을 선조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조금 씁쓸하다.


임금 선조가 아닌 하성군 이균으로 삶을 살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그의 삶은 어쩌면 역사의 희생양이었을지 모른다.


가볍게 보고자 했던, 이 책에서 알게 된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개인의 아픔을 직면하게 된 탓이다.

그리고 수많은 '나' 중에 가장 행복한 자아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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