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 황소 북스
독서란 본디 읽는 시점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여러 환경에 따라 들어오는 구절이 다르다
이미 수백만 부 이상 팔리고 읽힌 이 책 '말의 품격'에서, 오늘의 나에게 들어온 구절은 지금의 내 상황과 내 생각이 오랜 시간 고민하여 찾고 싶은 해답 인지 모른다
누구나,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관계의 본래 성질이 가로막힘없는 연결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은 나에게 있지 않다
그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는 방법이 유일한 길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문을 열고 나오게끔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 입이 아닌 귀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모두' 들어줘야 한다
Hearing 이 아닌 Listening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을 듣다 보면
입이 자꾸만 달싹거린다. 머리로는 이미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 이야기할 것인지 정리하고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뇌를 1/4 만 사용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나머지 3/4는 결국 내가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듣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것인가?
어쩌면 우리의 입과 말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침묵이 가장 깊은 감정을 전달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상대방의 말을 듣다 보면 언젠가 말해야 할 타이밍이 온다
내가 하고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아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할 때, 그때가 타이밍이다
그 타이밍이 오면 난 어떤 의도를 담아 말을 건네고 전달한다
그래서 내 말은 그 사람에게 말이 아닌 의도와 감정과 느낌과 뉘앙스와 함께 다가간다
그래서 말을 건넬 때, 말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담고 싶어 하는 기운이다. 그 기운이 부정적이라면 아무리 보기 좋은 단어들로 구성된 말이라 해도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다른 말로는 진심일 것이다
그렇게 좋은 의도를 갖고 건네는 진심이 때로는 그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는 나 혼자만 있는 세상에서 내 가치와 기준으로 생각하고 결정지어 남에게 나의 답을 적용시키려 하는 일방적인 행위에서 비롯된다.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닌데, 내 말은 상대방의 약점과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 입히는 경우가 있다(물론 말하는 사람만의 잘못으로 한정 짓기는 힘들다)
결국
어떤 일로 인하여 힘들어하는 상대방이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두서없이 오롯이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워 이야기하는 상황이 왔을 때,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인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인지 잘 헤아려봐야 한다.
내 말과 의도가 아무리 객관적인 정답이더라도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면, 내 말과 의도는 거친 소음이 되어 상처를 더 깊게 낼뿐이다. 어쩌면 관계 맺음에서 필요한 것은, 올바른 의도보다 적절한 인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번지르르한 말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겨준다면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거친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17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