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발자국의 용기를 낼 것.
지난 15년간의 연애 패턴을 분석해 보니, 철저히 예방 초점적으로 관계에 접근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싸움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든다’고 믿으며, 연인과의 갈등 상황을 최대한 피했다. 이는 향상 초점의 '기회 추구'와 정반대인 '손실 회피'에 집중한 행동이었다.
전형적인 예방 초점 행동을 보인 사례는 2년 전 연애였다. 당시 연인이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 시간에 대한 배려 없이 소위 '급만남' 형태로 잡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난감했다. 당시 연인은 보고 싶으면 갑자기 찾아오는 스타일이었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개인적인 스케줄이 꼬여버려서 불편했다.
"이건 사소한 문제야. 그냥 내가 참으면 돼. 별거 아니니까 내가 상대방의 데이트 약속 잡는 스타일에 맞추자"며 반복되는 불편한 감정을 억눌렀다. 회사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분명 동료에게 "시간을 배려해서 미리 약속을 잡아주세요"라며, 불편함을 당당하게 말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파악하고, 적절한 합의점을 이끌어내서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에서는 유난히 관계가 나빠질까 봐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참아오며 쌓인 불만은 늘 갑자기 엉뚱한 상황에서 폭발했고, 상대방에게 느닷없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상대방은 "왜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했냐?"며 당황했지만, 이미 이별을 고한 순간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런 패턴이 여러 연애에서 반복되면서, 항상 연인관계를 먼저 끝내는 사람이 되었다. 늘 관계를 먼저 끝내다 보니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참는 게 능사인가?"라는 의문이 들던 참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이노베이션 대학원의 김영훈 교수님의 사회심리학 수업을 듣고 깨닫았다.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에 솔직한 대화라는 것을.
첫째, 애초에 목표 설정에 차이가 있었다. 직장에서는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소통하고 개선하자"는 성장 목표를 세웠지만, 연애에서는 "갈등 없이 평화롭게 지내자"는 현상 유지 목표를 세웠다. 같은 소통이라도 ‘일할 때 소통=서로의 업무스타일을 알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연애에서의 소통=불편함을 말할수록 리스크가 커질 것이다’라고 인식했다.
둘째, 통제감과 인식의 차이다. 직장에서는 내 노력과 성과가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느꼈지만, 연애에서는 상대방의 반응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컸다. 사회생활에서는 소통을 하면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 수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인의 경우 ‘상대방의 반응은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사람은 바꿀 수 없으니 나의 불편함을 말해봤자 긁어 부스럼일 것이다’라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압도되었고, 이는 더욱 방어적으로 연인관계에 접근하게 했다.
셋째, 실패에 대한 인식도 차이가 있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연애에서 갈등을 실패라고 인식하고, 말싸움이 반복되면 이것이 누적되어서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지레 겁먹었다.
연애에서도 용기 내어 향상 초점 방식을 적용해보려고 한다.
핵심은 갈등을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위협'이 아니라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기회'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첫째, 소통의 목적을 인지하고 언어 패턴를 변화시킬 것이다.
'싸우지 않기 위해 참는다'가 아니라, "더 행복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표현하고 논의한다"로 소통의 목적을 재정의할 것이다. 즉, 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이것을 해결하면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지하고 이제는 불편함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부담 없이 표현하려고 한다.
둘째, 메타 커뮤니케이션 적용해보자.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불편함을 쌓아두지 않고 우리가 서로 더 잘 지내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으로 더욱 많이 표현하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 수업 내용을 바로 연애에서 일어난 갈등 상황에 적용해 보았다. 시차가 있는 장거리 연애 상황에서 연락에 대한 콜백이나 문자 답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조용히 섭섭함을 쌓아두고 있었다. 여러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고 기다리면 되는데, 뭐랄까. 처음 서로 알아가는 타이밍에는 연락에도 한껏 곤두서게 되는 듯 하다.
과거의 나라면 "바쁜 사람이고 시차도 있으니까 이해하자"며 혼자 삭이고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하기로 마음먹고,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콜백이나 문자 답장이 중요한 사람이야. 나의 연락에 대한 피드백을 늦게라도 받으면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내가 힘이 빠지지 않고 이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소통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상대방의 반응은 방어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하다, 답장을 그때그때 한다고 해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연락이 오면 콜백하는 걸 놓칠 때가 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겠다. 말해줘서 고맙다.”며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시도를 통해 허심탄회하게 불편함을 이야기해도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모든 대화가 이렇게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녀는 다를 수밖에 없고, 바로 그 다름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얼마나 서로 잘 조율하고 이해하는지가 관계 유지에 핵심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상한 타이밍에 향상 초점적 접근으로 나의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역지사지로 생각했을 때, 나라도 남자 친구가 매일 관계 개선 아이디어를 매일 제안하면 부담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여, 앞으로 본질적으로는 향상 초점을 연애 관계에 적용하되, 적절한 시기를 잡아서 관계 유지와 발전을 도모하려 한다.
일에서는 리더십 전환 후 예방 초점의 함정에 빠졌고, 사랑에서는 오랜 기간 관계 유지라는 명목으로 자기 표현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수업을 들으며, "직장에서 사용하던 향상 초점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애에 진작 적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식을 전환할 수 있었다.
향상 초점은 스스로에게 기회를 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실된 상호작용을 이끄는 핵심 동기라 생각되며, 실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적용하려 한다. 특히, 지금 내가 가장 관심있고 잘 해보고 싶은 연애관계에서 표현하고 대화하는 것이 두려웠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작은 불편함이라도 솔직히 대화하며 함께 풀어나가는 시도를 해보겠다.
향상 및 예방 초점을 배우며 심리학이 자기 이해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고 행동수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한 번 더 체감했다. Higgins의 규제 초점 이론은 단순 이론이 아닌, 삶의 방향을 재설계하도록 도움을 주는 강력한 프레임이라 생각한다. 본 수업을 통해 얻게 된 통찰과 실천 전략들은 앞으로도 향상 초점적으로 일하고,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내적 근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