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아니라, 내가 나를 키워온 시간의 마디다!
서울에 올라온 것이 서른쯤이었으니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쯤 3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서울에는 왜 올라왔어? 혼자야? 어디 문제 있어?"
“그 나이 먹고 집도 없고 결혼도 안 했으면, 왜 지금까지 잘 살지 못했냐.”
“너는 이미 늦었다. 그러니까 잠을 줄여서라도 더 벌어야지. 빨리 따라잡아!”
나는 그 말들을 한때 진심으로 믿었다.
나보다 나를 더 안다는 듯, 나를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
지시하고 판단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해주던 사람의 말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나르시시스트였나 할 정도다.
돌아보면 본인도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잘 내뱉는다.
나보다 항상 우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들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을 신뢰하는 친구나 연인사이기도 했고
그거는 사실인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삼십 대를 지나 그토록 영원할 것 같은 무용도 놓고,
이미 결혼해서 자리 잡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표류하는 기분은 확실히 있었다.
무언가 여자로서의 생물학적 임무를 못하고 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빨리 모든 것을 보통 사람처럼 되돌릴 수 있는 노력에 대해
스스로 채찍질을 하기 시작했다.
불안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강했다.
“너는 여자나이로 늦었다”는 말은 생각보다 더 치명적이니까.
내 삶을 되돌리려면 더 많이 일하는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주말에도 불러주는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하러 갔다.
그러나 늦었다는 압박감에 따라잡고 싶어 채찍질하는 내 욕망과 달리 돈벌이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점점 누적될수록
몸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천장관절증후군으로 시달리고부터는 한 달에 한번 정형외과를 가게 되는 증상이 지속되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움직여서 돈을 버는 일이라고 재활을 받으며 알게 된 필라테스 자격증을 따며
아직 놓지 못한 예술강사일류 강화도까지 가는 일을 하기 시작했더니 난소낭종이란 것도 겪었다.
자격증을 따고,
잠을 하루 4시간까지 줄이며 15시간
일했다.
'나'라는 존재를 ‘물질적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다 결국,
어느 날 출근길의 지하철에서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자꾸만 만사 짜증이 나고, 수업 도중 눈물이 났다.
세상에 아무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생각만 반복되는 발끝까지 싸늘한 공황장애가 나를 덮쳤다.
수면장애로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잔 지 한 달이 넘은 시기였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너무 오래 지쳐 있었구나.
그리고 뒤늦게 알았다.
“여자가 그 나이에 혼자 살면서 뭐든지 다 늦었다”라고 말한 사람을 빨리 치워버려야 했다는 것을...
병원에서 지어준 수면제로 잠의 패턴을 다시 찾은 나는 다시 평정심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함께 주는 호르몬제의 부작용이 심해서 약을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내 삶에 매듭처럼 뒤꼬인 것을 풀고 싶었다.
[내가 남편이랑 함께 다녔던 심리상담센터가 있어. 너도 거기 가서 한번 받아보는 게 어때?]
지인의 한마디가 뭔가 열쇠를 받은 것처럼 꽂혔다.
태어나 처음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때,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그 시절, 상담은 매우 비싼 곳이자,
‘문제 있는 사람만 가는 곳’처럼 여겨졌으니까.
하지만 상담은 나를 고치는 곳이 아니라
‘나에 대해 배우는 곳’이었다.
내가 왜 무너졌고,
왜 흘러가는 말에 흔들리고,
왜 늦었다는 후려치는 말을 듣고만 있었는지.
왜 타인의 기대와 평가에 그렇게 휘둘렸는지
처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나에 대한 번역서를 얻었다.
'조금 더 명확하게 표현을 하고 아닌 사람들에 대한 단호함이 필요했구나!'
'그들보다 내가 우선시 되어야 했다!'
'그저 나를 너무 오래 돌보지 않았구나.'
이 깨달음들이
내 인생의 기울기를 바꿔놓았다.
조금 더 일찍 상담을 받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 시기에 만났기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흔들리지 않는지
또렷하게 배울 수 있었다.
힘든 시절에는 늘 생각했다.
시련은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에게만 준다는데...
하늘은 왜 나를 이렇게까지 떨어뜨릴까?
대체 나를 얼마나 강한 사람이라고 믿기에
계속해서 밑바닥을 보여주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부서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만 얻을 수 있는 기묘한 유머이자 회복의 방식이다.
나이는 죄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세운 증거다.
나는 예전처럼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승인에 목매지 않고,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도 않는다.
내 인생은 나의 속도로 자란다.
늦은 것도 빠른 것도 없다.
단지 살아온 만큼의 두께가 있다.
다행히 여자에게 나이가 죄가 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이는 그저
“결을 가진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좋은 결을 만들지 말지는 스스로 선택하기 나름이다.
사람을 잘못 만난 것도,
가난했던 것도,
마음이 부서졌던 것도,
더 이상 나의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의심하던 시간들까지도—
모두가 나를 더 깊게 만든 연대기였다.
세상은 내가 늦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스스로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스스로의 속도로 나를 키운다.
그건 모두
내가 어떤 사람으로 완성되어 가는지 설명하는 기록이다.
매해의 상처가 옹이가 되어
어떤 해는 깊게 파이고,
어떤 해는 조용히 덧입혀지고,
또 어떤 해는 유난히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렇게 생겨난 나무테들은
내가 지나온 시간을 부끄럽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더 튼튼하게 지켜주는 겹겹의 갑옷이 되었다.
한때 나는 꽃처럼 살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사람들 앞에서 예쁘게 피어나지 못하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지 못한 것을
스스로 탓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마치 나무의 새싹이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왜 나는 장미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슬퍼하던 순간과 비슷했는지도 모른다.
— 애초에 그 길이 내 길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꽃이 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나는 처음부터 나무가 될 씨앗이었다.
흔들리던 작은 새싹이었지만,
가난과 상실, 관계의 균열,
세상이 휘청이던 순간들을 지나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내 몸은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나는 꽃처럼 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람을 견디며 오래 서 있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나이 든다는 것은 그래서 여자의 미모나 예쁨이 빛바래는 일로 두려운 일이 아니라
내가 쌓아온 모든 시간이
한 겹, 또 한 겹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더 천천히 단단해지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자라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