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로 배우는 삶의 철학-29.힘을빼는 연습

힘을 빼는 순간, 삶의 방향이 드러난다

by Karin an

필라테스 수업을 하다 보면

회원분들께 가장 자주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힘을 조금만 빼보겠습니다.”


이 말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힘을 빼라는 말이 자칫 대충 하라는 의미로 전달될까 봐서입니다.

하지만 필라테스 강사로 오래 일할수록 한 가지는 분명해집니다.

힘을 빼지 못하면, 어떤 동작도 정확해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처음 운동을 시작하신 분들이나

몸을 오랫동안 사용해 오신 분들일수록

‘잘하려는 힘’이 먼저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에 힘을 강하게 주고, 어깨를 고정하고, 온몸을 붙잡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히 하는 자세처럼 보이지만

몸 안에서는 호흡이 막히고 관절이 잠기게 됩니다.


그럴 때 저는 동작을 멈추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어디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한번 느껴보세요.”


대부분 그제야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깨를 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십니다.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신호를 듣지 못한 채

잘하려는 의지로만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필라테스에서 힘을 빼는 일은

게으름이나 포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긴장을 내려놓고

필요한 힘만 남기는 과정입니다.


힘이 빠져야 중심이 드러나고,

중심이 드러나야 움직임이 이어집니다.

이 순서를 건너뛰게 되면

동작은 흉내 낼 수 있어도

몸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플로우(flow)’를 오해하곤 합니다.

흐름은 처음부터 즐겁게 만들어지는 상태가 아니며,

잘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단계도 아닙니다.


필라테스의 플로우는

충분히 익숙해진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수업 초반에는

한 동작, 한 동작을 아주 정성스럽게 다룹니다.

호흡을 어디로 보내는지,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관절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하나씩 확인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속도보다 정확성이 먼저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글을 배우는 과정에 자주 비유합니다.

처음에는 ‘ㄱ, ㄴ, ㄷ’ 같은

글자 하나하나를 배우듯

필라테스의 동작도 조각처럼 익히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모든 동작이 낯설고

의식과 집중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글자를 충분히 익히고 나면

어느 순간 단어가 되고,

단어가 이어져 문장이 됩니다.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글자를 하나씩 의식하지 않습니다.


필라테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성스럽게 반복된 동작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그때 비로소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이 플로우는 억지로 즐기려 할 때 생기지 않습니다.

억지로 몰입하려 하면

몸은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 중에

“지금은 빨리 넘어가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직은 글자를 배우는 단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로우는 그다음에 와도 늦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오래 지켜보다 보니

이 패턴이 운동 안에서만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일수록

몸과 삶이 비슷한 방식으로 굳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쉴 줄 모르고, 내려놓을 줄 모르고,

항상 긴장된 상태로 버텨오신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결국 몸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어깨 통증, 허리의 불편감, 호흡의 불균형으로 말입니다.


몸은 삶의 태도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필라테스 수업 중

“지금 이 힘이 정말 필요한가요?”라고 질문하다 보면

저 역시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이 선택은 꼭 필요한지,

지금 이 속도는 나에게 맞는지,

지금 이 긴장은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필라테스는 더 잘하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필라테스를

변화를 약속하는 운동이라기보다

기준을 만들어주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과해졌을 때 돌아올 기준,

힘이 들어갔을 때 다시 풀 수 있는 기준.

강사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회원의 몸을 바꿔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감각을 남기는 일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몸이 흐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힘을 빼자 중심이 살아나고,

중심이 살아나자 움직임이 이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때 회원분들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움직임에 힘의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정답을 맞혔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몸의 언어를 스스로 들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필라테스를 통해 제가 배운 삶의 태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완벽과 완성

승패의 여부가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몸과 마음을

매일 다시 수련하는 운동

저에게는 필라테스의 시간입니다

이전 28화필라테스로 배우는 삶의 철학-28.강사라는 직업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