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자세보다, 다시 돌아오는 기준을 가르칩니다
필라테스를 오래 가르치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운동은
몸을 완벽하게 완성시키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수업을 오래 들으신 분들일수록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선생님, 예전보다 잘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몸을 다루는 방식은 달라진 것 같아요.”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필라테스가 남겨야 할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가 아니라
몸을 대하는 기준의 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정렬’이라는 말을
바른 자세, 올바른 형태로 이해하십니다.
하지만 강사로서 제가 경험한 정렬은
완벽한 자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워크숍에서 들은 이야기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좌우 밸런스가 완벽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총동원해도
3%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필라테스에서의 정렬은 오히려
지금의 내 몸 상태를 인식하고,
그에 맞게 다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몸은 매일 다릅니다.
어제 괜찮았던 동작이
오늘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무리해서 어제의 기준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태에 맞게 다시 돌아오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 중에
“틀렸습니다”라는 표현보다
“지금은 다르게 포커스를 잡아볼까요?”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몸에는 실패보다
조정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필라테스를 처음 배울 때는
몸에 있는 다양한 움직임과 근육을 느껴보고,
정확성을 배우고,
그다음에는 연결을 배우고,
어느 순간부터는 흐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남는 것은
다시 정렬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운동을 넘어 삶으로 이어집니다.
삶에서도 우리는 자주 어긋납니다.
계획했던 방향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지나치게 애쓰거나
반대로 스스로를 방치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돌아오면 되는지를 알고 있는가입니다.
필라테스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이 힘이 적절한지,
이 호흡이 자연스러운지,
이 선택이 지금의 몸에 맞는지 말입니다.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삶에서도 비슷한 기준이 생깁니다.
조금 무너졌을 때
과하게 자책하지 않고,
다시 돌아올 지점을 알고 있다는 안정감입니다.
강사로서 제가 회원분들께
가장 오래 남기고 싶은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동작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몸을 다시 읽을 수 있는 감각,
그리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신뢰입니다.
필라테스를 통해 배운 삶의 철학은
더 완벽해지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성공적으로
동작을 수행하라는 뜻도 아니었습니다.
흐트러져도 괜찮으니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어긋나도 괜찮으니
다시 정렬할 수 있기를
몸을 통해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의
동작 완성도는
열 번 중 절반만 나와도
충분히 잘한 것입니다.
한동작을 이루는 세션을 진행하는 동안
초반에는 감각을 깨우고,
중간에는 밸런스를 잡으며,
후반부에는 힘이 빠지면서
무너짐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이처럼 한 동작, 한 세션에서도
전체를 완벽에 이르게 하는 자세를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다만 같은 동작에도
다르게 반응하는 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고,
지금의 상태에 맞게
다시 한 번 정렬합니다.
그리고 이 태도야말로
제가 필라테스를 통해 배운
삶의 철학입니다.
필라테스는
한때 ‘연예인들이 하는 보이기 좋은 몸을 만드는 운동’으로
세상에 먼저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필라테스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운동이 가진 철학과 태도,
몸을 대하는 방식에 담긴 깊이를
가르치는 사람조차
잊고 지나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동작을 잘 수행하는 법보다
몸을 존중하는 기준을,
완성보다 조정을,
성과보다 감각을
다시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이
필라테스를 이미 알고 있는 분들께는
기준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이 운동이 단순한 동작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을 가진 움직임이라는 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