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몸이 먼저 느끼는 감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감정은 늘 몸에서 먼저 시작된다.
그리고 몸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람의 ‘에너지’를 믿는 편이다.
말보다, 표정보다, 심지어 행동보다도
그 사람과 마주했을 때
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먼저 말을 건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유난히 버겁다거나,
별일 없이도 어깨가 무겁고,
손끝에 힘이 없고,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다면—
그건 마음보다 먼저
몸이 보내는 경고였다.
나는 그런 신호들을 무시하고 살아왔다.
“그냥 내가 예민한가 보다.”
“내가 좀 더 배려해야지.”
“조금만 참고 넘어가면 되지.”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하지만 몸은 늘 정직했다.
급기야 작년, 나는
부정맥이 아닐까 싶어 병원까지 찾게 됐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심박 측정기를 차고 이틀을 생활해 봤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때, 친한 친구에게 내가 심박수가 갑자기 이상해서 검사를 받았다고 하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혹시 화날 때, 숨을 참는 버릇 있어?”
-응?!
처음엔 웃었지만,
며칠간 스스로를 관찰하다가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화가 나면 숨을 멈추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관계 속에서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상황을 넘기려 할수록
나는 내 호흡을 멈추며
그 감정을 몸 안 어딘가에 눌러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숨이 차고, 그러다 크게 숨이라도 쉬면 심박수는 갑자기 쑤욱하고 내려갔던 것이다.
그건 병이 아니었다.
참아온 감정이 내 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를 괴롭히는 관계,
내 시간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
‘배려’를 가장한 무례함에 더는 침묵하지 않기로.
하나씩 정리했다.
처음엔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망설였지만—
내 몸은 즉각 반응했다.
어느 날 문득,
어깨가 가벼워졌고
심박수에 아무런 문제가 안 생겼고,
어지러움증도 사라졌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덜 피곤해졌다.
마치 몸이 말하는 것 같았다.
“잘했어.”
“이제 괜찮아.”
그건 내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해 보내는 말 없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몸이 먼저 웃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다르구나 싶었다.
내가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되는 상태.
몸이 더는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 안에서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결국,
몸이 먼저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관계는 너를 아프게 해.”
“너의 경계가 필요해.”
“거기서 나와도 괜찮아.”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몸과 함께 알아차리는 일이라는 걸.
지금도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오거나,
만나기 전에 내 컨디션을 꼭 체크해 본다.
내 몸이 무거워질 때,
그건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내 몸이 움츠릴 때,
이미 마음이 불편하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는 그것이 내 마음을 돌보는 첫 번째 방법이라는 걸 알기에.
몸이 먼저 아는 진실에
오늘만큼은 귀 기울여 주세요.
당신의 마음도, 그 안에서 조금씩 회복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