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이다.
그때 내가 따르던 무용 선생님이 어느 날 내게 건넨 말이다.
그 말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삶에 돌부리에 걸려 엎어질 때마다 어디선가 또렷하게 울려 들렸다.
나는 정말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며, 의연하게 말하는 사람.
하지만 정작 나는 너무도 예민한 사람이었다.
사람의 체취에도, 작은 소리에도, 피부에 닿는 감촉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
어쩌면 그 감각 덕분에 예술을 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읽고,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예민함은 늘 양면을 가지고 있었다.
섬세한 감수성을 선물하는 동시에, 세상에 쉽게 상처받고
늘 에너지를 남들보다 너무도 많이 소진하게 만들었다.
특히 사람 관계에서, 타인의 눈치와 감정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건 때로 축복이었지만, 때로는 큰 짐이었다.
대학교 시절, 선배의 부모님이 투자한 헬스장에서 처음 운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근무 조건이 ‘운동 배우기’였기에, ‘이왕이면 건강해지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헬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내 몸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이전보다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었고
거울 속에 드러난 단단한 배 근육이 꽤 멋져 보였다.
그때의 운동 경험은 이후 프리랜서로 지내며,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도록 노력하는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전환점은 몸과 마음이 함께 시들어가던 어느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장기 병원 생활,
불안정한 수입,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마주하는 미래의 불확실성,
그 모든 것이 겹치며 두려움이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 무렵,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신도림 도림천을 두 시간씩 걷는 산책뿐이었다.
하염없이 걷고 나면, 좁고 눅눅하던 원룸의 공기조차 조금은 숨 쉴 수 있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 했지만 정말 김치도 없이 라면으로 한 달을 버티던 시절이었다.
결국 탈모까지 왔고, 몸까지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나는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허리가 굳어 있었고,
벽을 짚고 혼자 일어나는 데 식은땀과 함께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날 아침은 마치 내 삶의 압축판 같았다.
송곳에 찔린 듯 아픈 허리 통증에 화장실에 앉을 수 조차 없어 엉엉 울던 나는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 있구나, 처음으로 체감했다.
그 시절 나는 정말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날카롭고, 가장 예민하며, 가장 많이 화났던 시기였다.
기침을 해도 아프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고통이었다.
조금만 잘못 앉아도 송곳에 찔린 듯 아프며 그 자리에 숨이 멈추고 어금니가 절로 물렸다.
그래서 그때 허리 아픈 어르신들이 왜 늘 화나 계신지, 왜 말끝이 항상 날이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모두가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니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다는 것도 너무 화가 났다.
몇 달 동안 여러 정형외과병원을 전전하며 다 다른 진단을 받다가 결국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방문한 고대 구로병원에서 ‘천장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이제는 일상 속 과한 스트레칭도 금물입니다.”
처방받은 염증약 꾸러미를 가슴에 안고
버스 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날.
무용을 하던 사람이 스트레칭이 원인이라는 진단은 마치 이제 몸으로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고
마지막 선고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나의 몸을, 삶을, 도무지 어떻게 다시 일으켜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그때쯤 연락온 후배에게 내 사정을 말하니
“언니, 필라테스해 보세요. 허리에 정말 좋대요. 그리고 그건 요가 같은 스트레칭운동이랑 다르데요!”
라는 한마디에 동아줄이라도 잡는 기분으로 샅샅이 찾게 되었다.
예술인 복지재단의 지원으로
나는 필라테스 센터에 처음 발을 들였다.
두렵고 낯설었지만, 어쩐지 거기서부터
내 인생이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익숙해질수록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몸이 너무 유연하면 근육이 잡아주지 못하고,
너무 단단하면 유연성이 사라져 관절이 아프다는 것.
필라테스는 그 중간을 찾는 연습이었다.
지탱하되 유연하게.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게.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내 몸을 쓰기만 했지, 방치해 왔구나.
그리고 그건,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구나'라고 느꼈다.
몸이 하루하루 단단해지자
내 말투도, 감정도, 표정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방어하던 태도가 내려놓아지고,
고통에 눌려 있던 말들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몸이 먼저 나아가니, 마음도 따라왔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나다운 나’가 고개를 들었다.
소심하지만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부드럽고,
상처받기 쉬우나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는 따뜻한 사람.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여유를 가지는 일이었다.
그 여유는, 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나는 내 통증과 함께 배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나처럼 한번에 벗어날 수 없는 통증으로 아픈 사람들을 운동으로 만나서 도와주는 일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듬해에 나는 정식으로 필라테스 강사가 되었고,
그게 바로 13년 전 일이다.
"선생님은 항상 엄청 탄탄해 보여요! 몸도 마음도요!"
최근 나를 만난 한 회원님의 말.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이렇게 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단단해지는 데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나약했던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시간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했던
내 여정의 한 단락을 꼭 나누고 싶었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단단해지고 있나요?
몸에서부터 마음까지, 나만의 단단함을 만들어가는 길을 찾고 있는 중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 그 시작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