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한, 우리는 움직인다.

움직임과 뇌, 감정 그리고 나를 다시 깨우는 시간

by Karin an

살아 있는 우리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설계된 존재다.

그 시작은 아마 어머니 뱃속,
태아였던 우리가 처음 존재감을 표현한 태동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움찔, 꼼지락, 쿡쿡
움직임은 곧 생명의 신호였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움직여야 할 의무가 있다.
움직임은 곧 생명력이고,
우리 몸은 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뇌는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뇌는 대부분의 진화 과정을
대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살아왔다.

사냥을 하고,
물을 찾아 헤매고,
무리를 따라 끊임없이 걷고 달리던 우리 조상들처럼
움직이는 상태에서 세상을 인식해왔다.

신경과학자 **대니얼 울프 펄트(Daniel Wolpert)**는 이렇게 말했다.


“뇌는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바로, 움직이기 위해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기억하고, 상상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움직임’이라는 행동으로 귀결된다.

말을 한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심지어 눈을 깜빡이고 한숨을 쉬는 것조차 모두 움직임이다.

우리는 이토록 끊임없이 움직이며
세상과 연결되고, 타인과 소통하며, 나 자신을 표현한다.

그런데 만약 이 움직임이 멈춘다면?
세상과의 접촉도, 감정도, 나라는 존재도 흐릿해진다.
우리는 살아 있는 듯,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멍게는 움직이지 않기 위해 뇌를 포기한다



멍게는 제법 유유자적한 삶을 산다.
올챙이처럼 생긴 유생 시절,
그는 물살을 타고 바다를 헤엄치며
살기 좋은 바위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를 찾으면 그 위에 달라붙어,
성체로 **변태(變態)**하고는
그 자리를 평생 떠나지 않는다.

고무로 된 백파이프처럼
하나는 들이마시고, 하나는 내뱉는 두 개의 관으로
바닷물을 필터링하며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이 고요한 삶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어릴 적 멍게에게는 뇌와 신경계가 있다.
그 덕분에 헤엄치며 방향을 정하고, 환경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바위에 달라붙는 순간,
멍게는 자신의 뇌와 신경계를 소화해 버린다.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캐럴라인 윌리엄스는 『움직임의 뇌과학』에서 이를

**“일회용 뇌”**라고 표현했다.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뇌도 사라진다.


20250707_0120_바위 위의 멍게들_simple_compose_01jzg8k0bvfsv9vapvx4b71mre.png



어쩌면 우리도 멍게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않고,
선택하지 않고,
감각하지 않으며
그저 ‘살아 있는 척’
정지된 바위처럼 버티며 살아가는 삶.

편안함을 위해,
혹은 완벽함이라는 이상을 위해
움직임을 멈추는 삶을 자꾸 선택한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삶에는 변화도 없다.
변화 없는 삶에는 깨달음도, 회복도, 성숙도, 존재감도 없다.




우리는 왜 힘들 때 움직이고 싶어질까?


심란할 때,
우리는 무심코 산책을 나선다.
“머리가 복잡해서” 걷고,
“가슴이 답답해서” 뛰며,
누군가는 갑자기 청소기를 돌리고,
누군가는 밤거리를 달린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도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뇌는 원래 움직임을 위해 만들어진 장기다.
멈춰 있을 때 오히려 혼란에 빠진다.


리듬 있는 걸음,
두근대는 심장,
팔과 다리가 반복하는 패턴 속에서
우리는 점점 감정의 중심으로 되돌아온다.

운동이 주는 이 강력한 정리감은
단지 칼로리를 태우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회복하는 리셋 버튼이다.





뇌는 움직임에서 용기를 배운다



켈리 맥고니걸은 『움직임의 힘』에서 이렇게 말한다,

“움직임은 즐겁게 느껴질 때에만 중독성이 없다. 나는 뇌가 회복력의 강화를 감지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용기와 배짱은 신체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부수효과다.”


운동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고
불안과 우울을 조절하는 편도체와 전전두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움직일수록 더 용감해지고, 덜 불안해진다.
몸이 먼저 균형을 찾으면,
마음도 따라온다.





필라테스는 몸을 통해 나를 회복하는 언어


나에게 있어서
필라테스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움직임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일' 그 자체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나는 내가 얼마나
한 방향으로만 반응해왔는지를 깨닫는다.

내 몸의 비대칭,
무의식적인 긴장,
반복되는 감정의 패턴까지.

조셉 필라테스는 말했다.


몸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필라테스의 중심, 조절, 흐름, 정렬, 호흡을 의식하는 모든 과정은
결국 **‘나 자신을 재구성하는 철학적 작업’**이 된다.

움직임이 '운동'이 되는 순간은 많지만,
움직임이 ‘깨달음’이 되는 순간은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순간을
필라테스는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무엇으로부터 움직임은 시작되는가?

그 시작은 아주 작은 불편함일 수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이 감정을 털어내야겠어.”

혹은

“그저 조금이라도 상쾌해지고 싶다.”는
몸의 본능적인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멍게처럼 살아갈 수 없다


움직임을 포기하고,
선택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삶은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진짜로 살아 있는 삶은 아니다.

우리는 자연처럼
움직이고, 흔들리고, 변화하며 살아야 한다.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움직이고 싶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삶을 가장 삶답게 살아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 마무리하며

혹시 요즘,
마음이 무겁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나요?

혹은 정말,
살아 있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딱 15분만이라도 걸어보세요.


그게 힘들다면,
팔을 올리고 쭉 뻗어보세요.
어깨도 한 번 툭툭 돌려보세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어보세요.



아주 작고 미세한 움직임에서
당신의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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