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해'라는 말이 싫었던 시절

이미 힘이 없는데 무얼 더 하란 말인가?

by Karin an

“운동 좀 해라.”

그 말이 칭찬도, 조언도 아닌

무언의 평가처럼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통증을 달고 살던 시절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는데,

사람들은 늘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운동해 봐. 다 나아질 거야.”

마치 내 모든 문제가

운동만 하면 해결될 것처럼 했다.


그 말은 나를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바꾸고 싶어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조금 피로해 보이면, 살이 붙으면,

혹은 통증에 시달리거나, 무기력해 보이면—

언제나 결론은 ‘운동해라’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춤을 추고,

몸을 종일 아낌없이 쓰고

매일 저녁과 아침에 근육통을 안고 살아가던

'몸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운동 좀 하라"는 말은

너무나 나를 이해하지 않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미 체력적이 바닥난 상태라

짜증 섞인 숨을 참고 있는데,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나는 '운동'이라는 단어에

내가 선택한 몸의 쓴다는 일에 대한 어떤 억울함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도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오직 공연에 시달렸던 억울한 감정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많은 몸의 고비를 통해

지금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말을 듣는다.


“선생님은 필라테스도 하시는데, 또 다른 운동도 하세요?”

그럴 때면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달리기는 저에게 에너지를 가져다주고, 웨이트는 버틸 수 있는 체력을 주니까요! 그 밖에도 재미난 운동들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덧붙여 답한다.

‘이제 운동은 나를 돌보는 방식이 되었으니까요.’


무용을 하던 시절,

내게 몸은 ‘표현’의 도구였다.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때의 나는

늘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하는 듯 몸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내 몸은

마음을 이끌어주는 행복한 나 자신이다!

단지 보여주기 위한 표현하기 위한 몸이 아니라,

스스로를 충전하고 회복시키는 그릇이자 내 영혼의 집이다.

맡아야 할 일들이 많을수록

체력은 곧 ‘여유와 지탱력’이 된다.


몸의 체력은 내 일상을 버티게 하는 내 마음의 체력과 같은 것이다.


물론,

내가 먹는 음식은 내 몸의 모양을 만든다.


하지만 운동은,

내 마음의 모양을 바꾼다.

다양한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하면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겸손해진다.


운동은 또한 세상의 훈육과 비슷하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누구도 훈육받지 않는다.

운동은 책상에서 배운 마음 다짐과는 다른 진짜 훈련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몸의 한계로 땀이 솟아오를 때면,

그 안에서 나는 많은 잡생각을 덜어내고 집중과 몰입의 에너지를 받는다.


복잡한 상념이 떨어져 나가고,

몸의 감각이 깨어날수록

마음의 쓸데없는 가시들도 하나씩 빠져나간다.


움직임에는 힘이 있다.

‘움직임의 힘’이라는 책도 있을 정도로,

걷기만 해도, 우리 몸에는

생명력과 방향성이 살아난다.


그리고 나는 안다.

운동을 통해 한 단계씩 나아갈 때마다,

내 안의 작은 성취가 쌓이고,

그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성장시킨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운동해’라는 말이

더 이상 명령도, 평가도 아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응원이 되었다.


내 몸이 내 마음을 키운다.

움직임이 삶을 살린다.

그리고 운동은, 결국 나를

더 나은 나로 이끄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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