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검열,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제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왜 나를 꾸짖고 있었을까

by Karin an
모양새가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매번 회초리를 맞는 것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당황하고 섭섭한 마음에 기댈 곳 없는 모퉁이에 자꾸만 선다. 자기로 태어나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 세상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런저런 시절의 경계 없이 마음의 요동은 늘 공존한다. 나는 그저 숨을 가다듬고, 진정한 나를 찾아 누구의 수행자가 아닌 내 생각의 실행자로서, 그저 다시 용기 내어 걷기로 했다.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나답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누가 그런 삶을 강요한 적은 없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늘 그런 기준을 들이댄다.


결혼을 일찍 해서 안정된 삶을 사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 한편이 부러워진다.
나는 언제나 집안의 가장이었고,
늘 앞서 살아내야 했던 사람이라
그들의 ‘보통의 삶’이 오히려 더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분노보다 먼저 자책이 찾아왔다.



“내가 노력을 덜 한 걸까?”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이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걸 요구한 적이 없었다는 걸.
결혼도, 완벽한 운영도, 멋진 회복도,
누구도 내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건 전부 내가 나에게 내린 제한이었다.


평범해지고 싶다는 이름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안정과 성공을 흉내 내며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무엇인가를 알고 시작하려 하기보다,
그저 시작해 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료의 말처럼,



“무엇인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해야만 할 수 있는 것임을, 살면서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다.
자신에게 무엇도 시작해주지 않음으로써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또 해낼 수 있는지 경험조차 시켜주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너무 나를 잘 안다는 이유로
새로운 나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놓아주기로 했다.
이제는 뭐든 사소하게라도 경험해 보고,
그중 싫증 나지 않던 것을 천천히 계속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몰랐던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여운으로 남는 문장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왜 이렇게 스스로 제약을 정하고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걸까.
이제는, 나를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보려 한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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