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을 통해 배우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플라톤의 향연과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by Karin an

얼마 전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어릴 땐 한 가지 마음에 들어도 만났는데,
이제는 다 마음에 들어도 하나가 안 맞으면 안 만나게 되는 것 같지 않냐?”


둘 다 웃으면서도 잠시 말이 없었다.

그 말 안에는 나이 들어가며 생긴 두려움,
그리고 진짜 사랑이란 뭘까 하는 오래된 질문이 함께 섞여 있었으니까.


“그럼 사랑이란 게 결국 포용의 기술일까?”


내가 그렇게 물었고, 친구는 “그건 모르겠지만,
이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예전처럼 단순하지는 않아”라며 웃었다.


그 대화가 묘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사랑의 시작이 단순한 끌림이 아니라면,
그 안에는 뭔가 더 오래된, 근원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 이란 영화의
〈The Origin of Love〉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뮤직비디오 속 애니메이션 장면에는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에로스의 기원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청소년 시절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사랑이란 결국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일”이라는 그 신화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 강렬했다.


『향연』은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일곱 명의 인물이
각자 에로스를 예찬하며 사랑에 대해 연설하는 대화록이다.
그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에서 이 노래의 모티브가 나왔다.
태초의 인간은 원래 둥근 존재였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붙어 너무 완전해서 신들의 질투를 샀다고 한다.
그래서 제우스가 그들을 둘로 갈라놓았고,
그 이후 인간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며 살아가게 되었다.


결국 사랑이란 건, 결핍에서 시작된 회복의 본능이었다는 이야기다.

생물학적으로도 이건 설명이 된다.
우린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없는 유전적 정보를 가진 상대를 알아본다.
그건 단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 뇌는 ‘이 사람이다’ 하고 본능적으로 판단한다.
이성은 늘 뒤따른다.


그래서 사랑이 오면 우리는 종종 이성적 장님이 된다.
어쩌면 그건, 종의 생존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아주 원초적인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그런 본능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말한다.

“미성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에서 시작되는 사랑이다.
누군가를 통해 나를 완성시키려는 게 아니라,
이미 채워진 내가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랑.
그건 관계의 형태가 아니라, 성장의 형태다.

우리는 결국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어쩌면 사랑의 여정은 이렇게 정리될지도 모른다.
결핍으로 시작해 → 본능으로 이어지고 → 성숙으로 완성되는 여정.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린 수많은 실패와 후회, 미련과 집착을 통해 자신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투사하며,
‘나만큼’이라는 기준 안에서 상대를 대한다.


스스로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결국 그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성숙한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
우리가 매주 매체나 주변에서 보는 이혼과 사건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은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다.
그 많은 실패는 결국 자신을 깎고 들여다보며,
‘이상적인 나’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나’를 구분하고
다시 시도하며 자라나는 과정이다.

(물론 성장하지 못한 채, 같은 패턴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가 유년시절처럼 쉽게 사랑에 빠지지 못하고,
성숙한 사랑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는 지금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지금, 어떤 버전의 자아로 사랑을 하고 있니?”
당신은 어떤 버전의 사랑을 꿈꾸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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