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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Sep 22. 2015

어제와 오늘의 틈

새벽 세시 이십오분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다. 잠을 못 자면 몸  이곳저곳이 더 말을 안 듣기에 되도록 열한 시 이전에 잠이 든다. 무엇에든 취해야 잠이 들 수 있는 나는 어떤 밤은 약에 취해 어떤 밤은 술에 취해 또 어떤 밤은 감성에 취해 잠든다. 어젯밤엔 약에 취해 열한 시 십일 분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머리와 어깨의 통증이 심하다. 날이 갈수록 주기는 짧아지고 강도는 세져서 자주 먹으면 안 좋다는 걸 알지만 때로 그것이 아니면 안 될 진통제를 어젠 두 번이나 먹었다. 꿈결인지 구름 위인지를 둥둥 떠다니며 하루를 보내고 뜬 눈으로 가만히 서서 정신이 홀로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잠이 든 지 약 네 시간 만에 깼다. 옆 집 남자의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매일 트럭을 타고 어딘가에 다녀오는데 그 시간이 일정치 않다. 밤낮없이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밤낮없이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같기도 하다. 아파트 현관과 뒷마당 놀이터 근처에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는 꼭 아파트 복도  한복판에서, 혹은 우리 층과 아래 층 사이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그가 아무리 시도 때도 없이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한들 깊은 잠에 들면  문제없다. 난 스스로 고통스러웠다. 머리의 양 옆쪽을  압박당하며 동시에 침 수백 개가 오른쪽 어깨를 일제히 찌르는 듯한 고통에 휩싸여 신음소리도 낼 수 없었던 나를 담배냄새가 깨워준 것이었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나의 고통을 남의 일인 양 바라보며 새벽 세시 이십오분에 이런 글을 썼다.



어둠은 지쳐 내려 앉았고 하늘은 하얗게 질린 새벽 세시 이십오분.

나는 어둠처럼 지쳐 누워 새벽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잠들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하루는 이렇게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으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지금 이 순간도 감사하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일각의 틈이 있다면 지금 같다.

그 틈이 좁아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며 기다리고 있다.



  여느 때처럼 아침은 밝았고 다행히 나는 눈을 떴다. 사실 꼭 뜨고 싶은 건 아니었다. 눈을 뜨기 전 정신이 어렴풋이 깨어날  때쯤 새벽에 뭘 썼는지 궁금해졌다. 마지못해 눈을 뜨고 머리맡에 놓인 손바닥만 한 수첩에 손을 뻗었다. 눈을 비비고 퍼뜩 맞지 않는 초점을 맞추려 미간을 찌푸리며 들여다 봤다.

  "엉망진창이네. 감사하긴 개뿔."

  믿기지 않지만 반쯤 무의식에 사로잡혀 썼으니 나도 알지 못하는 나의 진심인 걸까.


  어젯밤 듣다가 멈춰둔 오디오의 재생 버튼을 누르니 때마침 김광석의 '일어나'가 흘러나왔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으나 영 개운하지 않았다. 어깨가 뚝 하고 끊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마시고 몸의 기관들이 깨어나는 것을 가만히 느끼며 호흡을 했다. 초단위로 호흡을 하며 문득 새벽의 시간과 아침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시계를 돌아보았다.

자다 깨서 백오십 여 자의 글자를 써 내려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분명 1분을 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와 다 쓰고 나서 확인한 시간이 분명 이십오분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칭의 한 동작을 할 때보다 짧은 시간에 백오십여 자의 글을 쓴 것이다.


  새벽 세시 이십오분은 정말 어제와 오늘의 틈이었을까. 완전히 잠이 든 것도, 정신을 차린 것도 아니었던 나는 정말로 그 틈이 좁아지는 모습을 천천히 확인하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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