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이쓰 Dec 08. 2015

누룽지와 오토바이와 메밀전병

추억은 남는다.

며칠인지 모르고 집을 나섰다. 2, 7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열린 걸 보고 오늘이 7일이라는 걸 알았다. 아침 일곱 시 반, 바지런한 시장의 움직임 속에서 나만 천천히 걸었다. 김장철이라 걸음마다 배추가 가득 쌓여있고 온갖 푸성귀와 생선이며 먹을거리와 생활용품까지 없는 게 없이 다 있었다.


그리고 바짝 마른 누룽지가 보였다. 누룽지 앞에 서서 한참을 넋 놓고 있었나 보다.  주인아주머니가 먹어보라며 조금 떼어주셨다.

아... 누룽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나서요.. 하며 감사히 받아먹었다.

큰 이모부는 무엇이든 꼬득꼬득한 것을 좋아했다. 밥은 꼬득꼬득 면발은 꼬들꼬들, 음식이라면 우선 쫄깃하고 씹을 게 있어야 했다. 반면 큰 이모는 무른 밥과 푹 퍼진 면을 좋아했다. 언젠가 보름 남짓 강원도에 있는 이모 댁에 머물렀을 때,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듯 넌 어느 쪽이냐고 물어보는 이모부께 난 적당한 게 제일 좋지만 둘 다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래? 누룽지 나눠 먹을 친구가 생겼네? 하셨다. 이모와 둘이 밥을 먹을 땐 무른 밥을 나눠 먹고 이모부와 둘이 밥을 먹을 땐 누룽지를 나눠 먹었다. 나눠 먹을 친구라는 말이 참 좋았다.


그는 새벽같이 집을 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할 땐 꼭 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할 때 전해주려고 헬맷도 채 벗지 않고 거친 숨을 내쉬며 메밀전병이 든 검은 봉지를 건네주곤 했다. 우리 부산 조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 머무는 동안 실컷 먹으라고. 사두고 먹으면  맛없으니 매일 방금 구운 걸로 먹으라고 그렇게 사 오셨다.


그는 누가 봐도 아들만 있는 집에 늦둥이 딸이 생긴 모양으로 날 예뻐했다. 당신에겐 이미 다 큰 딸이 넷이나 있으면서. 외삼촌들보다 더 친하고 편했던 이모부였다. 때론 우리 아빠였으면 했다. 그런 그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 누룽지가 이렇게 바삭하고 맛있는데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친 파장 속에서 누룽지를  한 아름 샀다. 아그작 아그작, 노릇한 추억을 곱씹었다. 내일은 메밀전병으로 맵삭한 추억을 곱씹으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