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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Jan 30. 2016

마음의 일

너는 너이고 나는 나였다.

오래된 친한 친구를 석 달 열흘 만에 만났다. 멀리 떨어져 살고 각자의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였다. 만나지 않는 동안 연락을 한차례도 주고받지 않아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상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공을 따라 취업했고 그 분야에서 이미 자기 자리를 다지고 있는 반면 난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쉬고 있다는 사실만 여전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 한 가지 사실은 꽤나 묵직해서 그녀와 함께 했던 학창시절과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울고 웃던 모든 시간을 너무도 쉽게 짓눌러버렸다.


오랜만에 핸드폰 화면에 친구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얼른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지만 예전과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준비하다가 포기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결심하던 때여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그 모든 과정을 봐왔던 친구에게, 하지만 최근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심경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턱이 없는 친구에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민망하고 난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얘기하고 싶었다. 네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너의 일상을 알고 싶다고. 그래, 많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미움도 깊어져 애증의 관계에 다다르듯 그녀가 보고 싶은 만큼 나는 그녀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든 그녀와 내가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없다는 것을 알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괜한 저울질과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많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친구를 만났다. 얼굴을 보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우스운 것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그냥 웃었다. 약속을 잡고 만나기 직전까지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걱정은 까맣게 잊고 어느새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서로 모르는 일은 지금 이야기하면 될 일이었다.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너는 너이고 나는 나였다. 모든 관계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이에 있는 우정이라는 돌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친구는 짧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포기했던 것을 다시 하겠노라고 말했다. 조금 민망해져서 이번에도 안되면 나가 죽어야겠다고 실없는 소리를 했다. 어쩌면 스스로를 비하하는 발언의 근저에는 상대방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기대가 깔려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도 안되면 그러지 말고 나가서 우리 집으로 놀러  온나."라는 말이 마치 내가 듣고 싶었던 오직 한 마디였던 것처럼 기껍게 마음을 파고든 것을 보면.


한 사람의 마음엔 하나의 우주가 있다고들 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시공을 초월하며 멀쩡한 사람을 병들게 하기도 하고 병든 사람을 일어나게 하기도 한다. 주저앉지 말고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밭을 잘 다독여야겠다. 스스로 만든 세계에 갇혀 혼자가 되는 일은 어리석으니까. 그것은 또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는가. 사는 것은 가뜩이나 외로운 일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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