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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Feb 22. 2016

그때 나는 울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음 우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질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더욱이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발길 끊겨 한 일주일이 되도록 홀로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성, 고궁의 벽은 헐어 흙이 떨어지고, 창문의 삭아버린 나무 위에 '아이세, 당신을 사라...'라는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쓰여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르고 난 뒤, 문득 찾아낸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거기 쓰여 있기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그런 행동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지...' 대체 내 그러한 행동이란 무엇이었던가? 치기 어린 장난, 혹은 어떤 거짓말, 혹은 연애사건? 이제 그 많은 잘못들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아버지는 그 때문에 애를 태우신 것이다.

  동물원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범 한 마리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 그의 빛나는 눈, 그의 무서운 분노, 괴로움 가득한 포효, 그 앞발에 서린 한없는 절망,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흴덜린의 시구.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는데,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찾아 방문하였는데. 이제는 그가 가히 우러러 볼만한 고관대작, 혹은 돈 많은 공장주의 몸이 되어 고작 모호하고 우울한 언어나 희롱하는 시인밖에 되지 못한 우리에게 손을 내밀긴 하나 달갑지 않은 태도로 대한다고 벌써 느껴질 때.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에서



  평생 할아버지라고 불러본 적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가 죽고 장례를 치르던 날, 불교신자들 사이에서 기독교인 우리 식구만 따로 나갔다. 나의 아버지가, 고인과 마주치기만 하면 싸우던 그가 '아버지를 참 많이 사랑했습니다.'라고 기도했을 때.

  온 집안 구석구석에 그가 쓰던 물건들, 먹던 음식, 써놓은 메모가 있는데 그 사람만 감쪽같이 사라져서는 돌아오지 않을 때.

  구피가 죽고 없는 어항을 들여다보며 이 녀석 어디 숨었나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그때 나는 울었다.

  김광석의 노랫말과 목소리. 최인애의 고향생각.

  돈을 내려고 동전 주머니를 열었는데 분명 있어야 할 돈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옆사람이 가만히 보고 있을 때. 민망한 마음을 추스르며 화장실에서 돈을 찾고 그것에 안도했을 때.

  작고 가냘픈 작은 이모가 배에 물이 가득 차 숨을 쉴 수 없다고 하고 미망인이 된 큰 이모가 우울증세를 보이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언니가 시댁 식구 앞에서 외가 식구를  창피해할 때. 나의 아픔을 더 이상 털어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나뿐인 자매를  다시 한번 마음에서 내려놓을 때. 그때 나는 울었다.

  머리가 너무 아픈데 무슨 수를 써도 나아지지 않고 아픈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글을 쓰고 싶은데 하얀 종이 위에 연필이 움직이지 않을 때.

  풋풋한 어린 친구의 이야기에 쉽게 동요할 수 없을 때.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사정을 알 수가 없고 그것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햇살이 내려앉은 바다는 하늘의 색을 담아 새파랗게 빛나는데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앙상한 나뭇가지, 끝자락 여기저기에 떨어지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잎사귀들.

  나는 내가 가진 것의 전부를 줄 수밖에 없고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의 일부조차 주지 않을 때.

  부는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릴지언정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자유로우나 곧은 사람이라고 네가 말해주었을 때. 그때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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