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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Feb 24. 2016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말

말이야 쉽지

위염과 장염의 습격을 받고 꼬박 하루를 굶었다. 울렁울렁 어질어질한 와중에 생강차만이 속을 달래 주었다. 생강의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맵고도 알싸하다. 뱃속이 뜨듯하다. 이것은 아마도 생강의 기분. 고로 오늘 밤엔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토끼가 되기로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차피 내가 말하는 것들은 다 말이  안 되니까 괜찮지 않을까. 가만히 있으면 2등이라도 할 텐데, 바깥세상으로 튀어나와 천방지축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말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과 오래가지 못할 감정의 표현을 참 많이도 해왔다,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사실과 희망사항을 바꿔 말한 적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모른 척해보려 해도 내가 뱉은 말들은 두더지가 되어 여기저기서 불쑥거리고 올라와 눈을 깜빡인다. 가끔은 진심으로 잊은 것도 있는데 어쩌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면 차라리 두더지가 되어 땅 속에 숨어있고 싶다. 빼꼼히 고개를 들 때마다 누군가 사정없이  방망이질해주었으면.


정확히 일주일 전에는 편두통 때문에 눈물 나게 아팠고, 사흘 전 비오기 전날엔 날갯죽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파 손가락까지 퉁퉁 부었다. 아니 도대체 왜 맨날 다른 곳이, 그것도 극심하게 아프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난 한 달에 멀쩡한 날이 손에 꼽을 만큼 며칠 안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해서 티 내지 않을 뿐 신물 나는 잔병치레는 끝도 없다. 나의 각종 통증들은 어머니로부터, 약한 위장과 관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들은 각자의 고통이 결합되어 모조리 나에게 쏠린 것을 가끔  미안해한다. 그래서 언젠가, 유전자란 이토록 신비롭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니 나는 자식을 낳으면 안 되겠다는 말로 화답(?) 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태어나서 부모님께 한 말 중 가장 못된 말이었다.


때론 생각으로 그쳐야 할 것을 알면서 불시에 내뱉고는 후회한다. 그러게 생각이 말이 된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은 또한 행동이 된다니 생각부터 착하게 해야겠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게 말처럼 쉽냐는 말 역시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건 정말이지 쉬우니까. 말로는 무엇인들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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