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한다.
어느덧 삼 년째 암투병 중인 이모를 보러 강원도에 다녀왔다.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거리가 거리인지라 자주 가지 못하고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얼굴을 보고 온다. 그렇게 먼저 세상을 떠난 어른들의 마지막 모습에서 보았던 죽음의 그림자를 이모의 눈동자에서 보았고, 평생 미스터리였던 나의 짝짝이 귀가 작은 이모께 물려받은 귀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못난 왼쪽 귀가 갑자기 사랑스러워졌다. 왼쪽 귀가 못생겨서 늘 머리를 내려 가리는데 이모도 그랬던 터라 아무도 몰랐다고.)
일주일이 흘렀다. 뼈와 가죽밖에 안 남은 이모의 힘없는 미소가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보다 이모를 더 많이 닮은 나는 거울조차 못 보겠다. 어젯밤 생일상을 거하게 받고 술기운에 헤실헤실 웃을 때에도 몇 번이나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꾹꾹 눌렀다. 어릴 적 나의 생일은 술 취한 어떤 이의 주정과 난동으로 얼룩져있어서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삶'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으로 방황했다. 그러나 올해엔 머릿속이 이모로 가득 차 그럴 겨를이 없었다. 생각을 하지 않아야 살 것 같아서 평소 즐기는 멍 때리기도, 생각을 해야 쓸 수 있는 글도 다 멈추었다. 죽 한 술 못 뜨던 이모가 오늘 아침 죽을 먹었다고 연락이 왔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은 지금을 위해 존재해왔을 것이다.
어머니의 형제자매들은 다 사람 좋고 말 없고 화내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앓기 시작하더니 남들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백세시대, 노령화 사회가 작정을 하고 나의 외갓집만 비켜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반면 아버지의 형제자매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불같고 말이 나오는 대로 내뱉는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아프지 않고 나이보다 젊게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이런 말을 했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하지 않으면 돼요. 남을 헐뜯지 않고, 내가 남에게 욕을 듣는 것을 못 견뎌하지 않고, 할 말하면서 마음대로 살아야 해요. 엄마와 내가 가진 모든 만성질환들이 신경성이고, 우리처럼 늘 머리 아프다던 착해빠진 작은 이모가 많이 아프잖아요. 착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썩 오래 살고 싶은 세상은 아니지만 아프지 맙시다, 우리.
나의 삶이 아닌 남의 삶, 나의 시선이 아닌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알기 때문이었다. 인정한다. 이것은 착한 게 아니라 미련한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그리고 나의 언니는 아버지 한 사람의 영향 아래 언제나 휘둘리고 살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은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었고 웃어도 뭐라 하고 울어도 뭐라 하는 통에 나의 순수한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답답함이 숨통을 조여와 여기저기서 '아빠 때문에...', '그러니까 그게 아빠 때문에 나는...' 라며 아버지 이야기만 하는 나를 발견했다. 평생 발목을 묶어두고 훈련시킨 코끼리가 나중에 발목을 묶어두지 않아도 어디 가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나는 나를 체념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머니께 못되게 살자고 말하는 순간 이해되지 않던 한 사람이 이해되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다. 함부로 말하고 상대방의 뜻을 왜곡하며 매사에 못돼 먹은 그 사람. 하지만 표현이 비뚤어졌을 뿐 진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는 사람(이것을 깨달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오래도록 미워했으나 결국은 미움을 넘어 애증의 관계가 된 나의 아버지. 자신을 지키려고 그렇게나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구나. 그는 누구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2월 중순 여든 살이 넘도록 정정해서 백이십은 족히 살 거라 여겼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단 한 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본 적 없던 노인이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숨만 붙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동자 굴리는 일 뿐이었을 때도 그는 당신의 장남을 노려보기만 하다가 얼른 다른 자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와 노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둘은 외모와 성격이 똑같이 닮아 사랑하는 방법 또한 똑같이 몰랐고 각자의 비뚤어진 감정을 쏟아내며 평생 으르렁댔다.
그래, 이것은 지난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끊었던 술을 홀짝이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을 때도 느꼈던 일이었다. 겉보기엔 똑같이 못된 두 사람의 치졸한 싸움이었지만, 사실은 아들을 미워하고 아버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고자 하는 부자간의 교류가 아니었을까. 그 교류가 끝나버린 뒤에야 영정 사진 앞에서 당신을 많이 사랑하노라고 고백하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이미 그때를 기점으로 이해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단정 지었던 아버지를 이해해 버린 것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저 안쓰럽게 여겨졌다. 오랫동안 날 갉아먹던 미움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시인 윤동주의 <서시> 속 한 구절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져, 보는 것마다 슬프고 듣는 것마다 아프게 되었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최근까지도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느라 참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누군가를 탓할 때 절대 발전이 없다는 걸 모른 채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해 후회하는 아버지를 나는 용서했다. 그러자 드디어 나 자신을 용서하게 되었다. 크리스천으로서 언제나 날 따라다니던 주기도문의 숙제도 풀었다. 이제 한 발짝을 제대로 뗀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주기도문-
이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무조건 나의 모자람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무엇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장담해 버리지도 않는다.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들은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구절을 몹시 좋아한다. 우리는 결국 '사랑해야 한다'는 말. 사랑하기 위해선 먼저 용서해야 한다. 어쩌면 사랑과 미움은 한 끗 차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면 무관심일 뿐 미워하지 않는다. 한 끗 차이인 사랑과 미움 사이에 용서가 있다.
여러 번 수술을 겪고 항암치료를 견디다 몸이 이겨내지 못해 항암치료 중단 처방을 받았을 때, 이모는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했다. 아직 살아있는 지금이 덤으로 주어진 시간들이기에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충분하다. 건강, 가족, 나의 생명이 처음부터 당연한 듯 있어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충분한지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덤, 선물이라는 진부한 깨달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러니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어차피 나를 바꾸는 일은 힘드니까 못된 사람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고 어머니께도 말씀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