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이쓰 Mar 12. 2017

동그라미

사랑의 모양

죽은 듯 깊고 오랜 잠을 잤다. 열 시간 반 만에 가까스로 일어났다. 여기서 가까스로라 함은 모른 척 눈을 감았으면 두세 시간은 거뜬히 더 잘 수 있었다는 의미다. 밤새 꿈도 많이 꿨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분이 괜찮다. 재밌는 꿈들이었을 거다.


가끔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바로 어제의 일이 까마득해지고 오늘의 내가 새삼스럽다. 매일이 새로운 날이고 언제나 오늘은 처음이지만 뭐랄까, 좀 더 낯선 오늘이랄까. 


일어나 앉으니 온몸에서 뼈 소리가 난다. 몸의 기관과 감각을 깨우고 문득 생각했다. 사랑받고 있다고.


아낌없이 날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면 내 가슴의 결론은 결국 사랑이다.


하루하루가 좌절과 고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의 유년시절은 늘 그러했지만 특히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했던 때, 고등학생일 때였다.

태어나자마자부터 난 하나님을 믿었다. 부모님이 믿었고 언니가 믿었으니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나의 아버지는 한 번도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좋다가 나빠지면 왜 저럴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처음부터 나빴으니 이해를 떠나 아무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삶을 저버리고 싶을 만큼 그의 나쁨이 최악이었을 때, 난 열일곱 살이었다. 당시 삶을 버틴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내가 믿는 하나님.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 가까이 사람 없는 교회 본당에 앉아 기도했다. 당신이 날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왜 사랑하는 거냐고. 왜 날 대신해 죽기까지 했냐고. 사는 게 너무 힘들지만 이유를 알고 사랑받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그런 기도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 모르겠다. 열여덟 살 봄 언젠가,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불어 하굣길이 추웠으니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기도를 하다가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저 멀리 하트 모양이 불타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나를 덮치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고 한참을 울다가 깨달았다.

아, 사랑이구나.


사랑이었다. 목적과 이유와 결론과 존재 자체가 모두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도 사랑이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것 없더라도, 미워하고 싶지 않은 내 가족이 날 힘들게 하더라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


당시 한 가지 더 기도한 것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렇게 아낌없이 날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쌓여왔는데 난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기도를 했는지, 어째서 내 곁엔 이렇게나 좋은 이들만 가득한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직 먼 일일지 몰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넘칠 만큼 충분하다는 사실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면서 정작 나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들이다. 그저 건강하고 별 일 없기를 바랄 뿐.


사랑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 나는 어떤 모양의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좋은 사람과 여행을 했다. 느리게 걷고 마음껏 웃고 사진을 찍었다. 경계하는 마음 없이 뻔뻔하게도 사랑받을 준비만 잔뜩 한 채 가서, 주는 것 없이 양손 가득 받아왔다. 동그란 물병과 어린아이가 후후 불면 공기 중으로 뿜어져 나가는 비눗방울, 배가 빵빵한 토토로와 긴 세월 바닷물에 마모되어 물결을 간직한 조개껍데기를 보았다.

그것은 동그란 모양인가. 모난 구석 없이 동그란 모양, 나의 사랑은 그러했으면 좋겠다.

동그라미에게 너는 왜 동그라미니? 하고 물어도 소용없다. 동그란 모양이니까 동그라미지. 하는 대답이 돌아올 게 뻔하다. 그래,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를 보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