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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Nov 01. 2017

깊이

천천히

간단한 음식이라도 그때그때 요리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현미밥을 먹기에 쌀을 최소 한시간 이상 불려놓는다. 간단한 국을 끓이더라도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맛을 내기 위해 먼저 다시물을 우려낸다. 물에 마른 멸치와 마른 새우, 다시마와 말린 버섯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오래 끓일수록 감칠맛 가득한 국물맛이 살아난다. 빨리 먹으려고 급한 불에 확 끓여버리면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엄마의 시간이 들어간 된장과 고추장과 잘익은 김치, 언니의 시간이 들어간 장조림과 밑반찬들로 매일 나를 채워간다, 천천히.


연필로 꾹 꾹 눌러쓰는 글, 한컷 한컷 소중히 담는 필름 사진, 한장이 맞는지 엄지와 검지 손가락 끝으로 조금 비비고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는 일, 골목을 걸으며 삶의 흔적을 들여다 보는 일, 여기서 저기로 떠가는 구름과 철썩이는 파도를 오래 바라보는 일.

















긴 시간 천천히 차오르는 것들을 생각했다.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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