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잊지 말고.
그러다 며칠 전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영화를 만났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과 동시에 조금은 슬픈 일이었다. 집에 가는 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세상엔 이미 많은데 나는 그냥, 지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해야 할까 봐."
그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하는 건 그 사람보다 더 잘하고 싶어서는 아니잖니?"
그러게 말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하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기 때문인 건데 나는 종종 그걸 잊는다. 나보다 백배는 더 잘 쓰는 친구들. 나보다 백배는 더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거고 나도 있는 건데 나는 종종 그걸 잊는다. 나는 그저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나가면 되는 건데 나는 종종 그걸 잊는다.
하얀 모니터 위로 깜빡이는 커서와 눈싸움만 하며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하얗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는 일이 가끔은 너무, 힘에 겨워서.
강세형,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의 하얀 모니터 위로 깜빡이는 커서 중 248-249p
낮에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책장마다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는 이책 저책을 빼내어 향긋한 책 냄새를 맡는 일에 빠져 한참을 머물다가 생각했다.
"세상엔 이미 좋은 글이 넘쳐."
서점에서뿐만 아니라 습작 노트에 하염없이 글을 끄적일 때도, 요즘 브런치를 하면서도 끝없이 드는 생각이었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심금을 울리는 글들이 어찌나 많은지 가끔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있자면 주눅이 들어 한참을 멍하니 있게 된다. 아무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이쯤 되면 해도 너무 하다. 이미 있는 이야기, 이미 있는 캐릭터, 이미 있는 구성. 그래서 독창적인 비유와 신선한 느낌을 담은 문장으로 승부를 봐야겠다 싶지만 그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또 부담감은 생겨난다. 여기서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글을 써서 올리고 나면 다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모른다. 예전만 못하다고 실망하면 어쩌지, 오타는 없을까, 그 표현은 아무래도 별로인데 지워버릴까.
강세형의 저서,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를 정확히 3년 전에 읽었다. 3년 전만 해도 나는 스스로 어른이라 여겼던 것 같다. 얼마나 어리고 작은 사람인지 아직 모를 때였다. 그래서 당시엔 책 내용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얼마 전 자기 전에 읽을 책으로 골라 시나브로 한두 장씩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하며, 몇 주동안 매일 조금씩 읽던 어느 날에도 오늘과 같은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세상엔 이미 좋은 글이 넘쳐."
그런 날이 올 줄 알고 기다렸다는 듯 그날 밤에 펼친 부분은 바로 "하얀 모니터 위로 깜빡이는 커서"였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서 치유받듯이 글 때문에 힘들 땐 역시 글이 제일이다. 나의 글을 쓰면서 비워내고 남의 글을 읽으며 채우는 일은 어쩌면 평생의 즐거운 숙제가 아닐까. 그렇게 강세형 작가는 날 위안해주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사기를 충전해도 모든 것은 흘러간다는 세상의 이치 그대로 그 또한 흘러가는 일이어서 어제의 사기가 오늘로 이어지질 않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이겨내야 하는 일.
남들의 말에 일희일비하고 완벽을 추구하느라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나는 아직까지 강 이 편에 서서 디딤돌이 흔들리지 않을까, 그래서 거친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한 발짝을 호기롭게 내딛었다가 또 한걸음 내딛기가 절망스러워 그대로 주저앉은 것 같기도 하다. 물에 좀 빠지면 어때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하고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라는 것부터가 자만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시도를 할 수도 없고 경험의 산물인 교훈도 얻을 수 없는데, 어서 건너가라고 단단히 버티고 있는 디딤돌 위에서 어쩌자고 이렇게 스스로 흔들리는 건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화장실에 가고 싶어 근처 지하도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집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는 중에 오늘 한 일을 떠올리다가 깨달았다. 화장실에 두고 온 책. 심장이 요동을 쳤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산 책인데다 절판되어 딱 하나 남은 것을 집어와서 더욱 그랬다. 분실물 센터로 바로 가려다가 화장실로 먼저 갔다. 다행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핸드폰이나 지갑이 아니어서,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사람들만 다녀가서 고마웠다. 책을 들고 돌아오자 부모님은 우선 책의 안부를 묻고 말씀하셨다.
"젊은 애가 왜 그러니, 정신 차려."
이런 일은 비단 오늘뿐 아니라 우산, 핸드폰, 체크카드 등 종류도 다양하게 수차례 겪어온 일이라 아무런 변명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을 잃어버릴 수는 있지만 잃어버린 일조차 까맣게 잊고 한참 후에 깨닫는 자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빛에 그저 민망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자만스러운 완벽주의에 휩싸여 일주일간 글을 쓰지 않았다. 물건도 하나씩 잃어버리고 꿈과 시간까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철렁했다. 지나온 길 저 어딘가에 두고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있으니 사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그저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나가면 되는 건데
나는 종종 그걸 잊는다.
다른 이의 칭찬을 들어서, 얻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어서 하는 일, 남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나의 방식을 고집하되 열린 마음으로 배우며 멈추지 않을 일. 그 일만은 손에 꼭 쥐고 어디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던 책처럼 되지 않도록.